올들어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월별 감소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가계에서 은행 대출을 받기보다는 돈을 갚는 기조가 강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작년까지만 해도 대출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하반기 들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관리 영향에 일부 은행들은 가계대출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었죠.
그렇다면 정말 단 3개월 만에 가계는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한 걸까요? 살림살이가 나아졌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알아봅니다.
주요 시중은행 가계대출 3개월 연속 감소
5일 은행권에 따르면 3월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1937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월말에 비해 2조7436억원 줄었습니다. 1월부터 3개월 연속 감소세 입니다.
아직 전체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가계대출 전체 점유율 60%이상을 이들 은행이 점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 은행권에서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잔액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 이례적인 일입니다. 통상 나라의 경제규모는 매년 증가하니 그만큼 자금을 필요로 하는 가계도 많아집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금액자체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제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3개월 연속 가계대출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일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가계대출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우리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렇게 단정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강력한 대출 규제가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2억원 이상 모든 대출을 받는 경우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DSR은 매년 갚아나가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합니다. DSR이 40%이상이 되는 경우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나아가 이 규제는 7월부터 1억원이상 모든 대출로 확대됩니다.
작년까지는 LTV(주택담보비율)을 규제하면서 주택담보대출위주로 대출을 옥죄어 왔다면 올해부터는 이 대상을 신용대출로 확대한 겁니다.
사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신용대출은 받기가 참 편했습니다. 대출차주의 신용점수부터 보유한 금융기관 대출정보, 카드결제정보 등 다양한 금융정보를 금융회사들이 모으기 쉬워졌거든요. 대출차주의 심사를 하기 좋아졌다는 겁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시장에 자금도 흘러넘쳤습니다. 코로나19 지원을 위한 정부 정책의 영향이었습니다. 작년초까지 마이너스 통장 1억원, 신용대출 2억원까지 가능하다는 은행들의 홍보문구를 접한 적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신용대출만의 특성도 영향이 있습니다. 통상 신용대출은 1년 만기, 만기일시상환 방식을 택합니다. 때문에 매달 이자만 갚아도 되기 때문에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상품에 비해서는 부담이 적습니다. 지난해에는 금리까지 낮았으니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DSR의 도입으로 신용대출을 받는다면 주택담보대출까지 모든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지니 자연스럽게 신용대출 수요가 줄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영향을 줬습니다. 신용대출을 받기는 까다로워졌는데, 예전보다 갚아야 하는 이자는 더 늘었습니다. 이에 신용대출 만기를 연장하기 보다 아예 갚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은행권 가계대출이 줄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 가계대출을 항목별로 보면 신용대출 잔액은 3월말 기준 133조3996억원으로 2월말에 비해 2조4579억원 줄었습니다. 전월 감소폭 1조1846억원보다도 규모가 커졌습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잔액은 638조496억원으로 전월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습니다.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와 달리 신용대출은 차주 입장에서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신용대출의 접근성이 높아진 데다가 금리까지 오르다 보니 가계가 신용대출위주로 상환에 나서면서 신용대출 잔액이 줄어드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은행들, 대출 빗장 푼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잔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대출에서 나오는 이자가 주 수익원인데 대출 잔액이 줄어들면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이자수익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들도 대출 빗장을 푸는 모습입니다. 일단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의 기본의 되는 시장금리가 높아졌으니, 우대금리를 통해 금리를 낮추기 시작한 겁니다.
최근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혹은 일부 신용대출의 기준이 되는 가산금리를 조정하고 우대금리 항목을 부활시켰습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던 여력을 동원해 낮은 이자를 받기로 결정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한도를 대폭 줄였던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의 대출 한도를 대폭 올리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이에 일부 시중은행 신용대출은 3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상품이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차주들이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대출잔액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올해 영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은행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객의 접근성을 높혀야만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리 계속 오른다는데…갚어? 말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출 실수요자들의 고민은 커집니다. 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한도를 높힌다고는 하지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속해서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앞으로 내야 할 이자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대출이 있는 차주 입장에서는 매달 이자가 점점 커질 것이니 대출 상환을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고,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자부담이 높아지는 만큼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은행이 대출 접근성을 높여줬지만 대출 차주의 고민은 커지는 상황인 겁니다.
은행 관계자들을 이럴 때 대출 전략을 꼼곰하게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일단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자부담이 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가장 고민을 해야 합니다. 기존 차주중 혼합형(고정금리와 변동금리 혼합상품. 통상 5년 동안 고정이후 변동) 주택담보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대출 차주중 아직 적용 금리가 변동금리로 돌아서지 않았을 경우 당분간은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은 계약 당시 금리대에서 이자가 형성되기 때문에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 최상단이 6%대에 근접했다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을 경우는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합니다. 앞으로 매달 이자는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출을 받은 지 꽤 지났기 때문에 은행들이 새로 내놓은 우대금리도 챙기기 어려울 겁니다.
이 경우 크게 3가지를 은행 관계자들은 추천합니다. 은행 한 PB는 "다른은행으로의 대환을 통해 우대금리를 챙겨 종전보다 낮은 금리가 가능하다면 대환 대출을, 아니라면 일부 일시 상환 혹은 혼합형 금리로의 변환 등 세가지를 고려할 시기가 온 것 같다"며 "통상 이러한 방식은 중도상환수수료와 같은 비용이 없기 때문에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용대출 차주의 경우 이제는 '갚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게 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작년에 대출을 받았다면 올해 이를 다시 갱신할 경우 DSR이 적용돼 만기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작년과 같은 만기 갱신이 힘들 가능성이 높아섭니다.
이 관계자는 "신용대출을 받았을 경우 최우선적으로 상환해야 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며 "다수의 금융회사가 DSR계산기를 운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한 이후 만기 도래시 내가 갚아야 할 목돈을 미리 마련해두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