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시 한 번 '자이언트 스텝'(정책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다. 정부는 금리차 만으로 국내에 유입됐던 해외 자금이 유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응은 필요하다는 시각이 번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미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시장에선 미 연준이 중장기적으로는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며, 한은 금통위가 또 한번 빅스텝에 나설 확률은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국내도 물가가 여전히 변수다. 7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6%선을 또 넘어선다면 재차 빅스텝을 할 것인가를 둔 금통위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자이언트 스텝…그 이후는
미 연준이 연이어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한 것은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대비 9.1% 상승하며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관련기사: 미 연거푸 '자이언트 스텝'…한미금리차 '시소게임'(7월28일)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예상됐던 결정'이라며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이번 통화정책 결정이 대체로 예상에 부합했다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도 시장 예상보다 '매파'(물가관리 중시)적 성향이 약해진 것으로 평가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파월 의장이 9월 이후 금리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점에 주목했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 서문에서 "통화정책이 더욱 타이트해져 향후에는 금리인상 속도조절이 바람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언급했고,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연말 미국 기준금리 전망치를 3.25~3.5%가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속도조절론 배경에는 미국의 2분기 가계소비 둔화, 노동시장 과열 해소 초기 단계 진입 가능성,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28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2분기 국내총생산 증가율도 연율 -0.9%를 기록하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를 감안하면 올 연말까지는 미 연준이 지속적으로 금리 인상을 결정하겠지만 내년에는 2~3차례 인하 가능성도 존재하는 등 통화긴축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파월 의장이 앞으로 보겠다는 경제활동과 노동시장, 물가 데이터 등은 향후 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을 지지하는 요인"이라며 "특히 노동시장 과열 해소 초기국면이라는 언급에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은의 다음 보폭…'물가'가 좌우
이처럼 미 연준이 통화정책 속도조절 기미가 보인다면 한은 금통위의 빅스텝 가능성도 이전보다는 낮아질 수 있다. 올해 남은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 인상은 지속하겠지만 재차 빅스텝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정 수준의 물가 대응 차원인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관건은 역시 국내 물가 상승률이다. 시장에선 지난 6월(6%)에 이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전년 동기대비 6% 이상 오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는데, 이달에는 이보다 높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7월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다면 경기 위축 우려 앞에 물가를 둘 수밖에 없다. 금통위가 내달에도 다시 빅스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청이 내달 2일 발표될 예정이다. 같은 날 지난 13일 열린 금통위 회의록도 공개되는 만큼 향후 통화정책의 속도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김수진 연구위원은 "금통위는 물가 상승 압력 확대와 주요국 통화긴축 가속화, 경기 보강을 위한 추경 편성 등을 감안해 8월에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물가 상승 압력이 강화되면 8월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