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을 받아본 적 있나요? 그렇다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방문했을 때 내가 산 주택 가격과 은행이 생각하는 가격이 달라 예상보다 낮은 한도를 제시받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은행은 내가 산 집의 가치를 '실제 구매' 가격보다 낮게 보는 걸까요?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주택담보대출시 은행이 집의 가치를 어떻게 따져보는지, 그리고 이런 기준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은행의 평가가 박한 이유
최근 지인이 서울내 아파트를 7억7000만원 가량에 매수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지인은 아파트 구매대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은 은행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담보인정비율(LTV) 50%가 적용돼 집값의 절반인 3억3500만원의 대출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반면 은행이 제시한 대출 한도는 2억8000만원이었습니다. 집의 가치를 5억6000만원 가량으로 본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은행은 집의 가치를 실제 매매 가격보다 더 낮게 봤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은 그 만기가 최소 15년 이상입니다. 따라서 은행은 해당 대출이 부실이 발생해 원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는 만기기간동안 주택가격이 원금보다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 주택가격에는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이슈가 잠들어 있기 때문에 감가상각을 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늘 고려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만기 이후 시점에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충분히 잠재돼 있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을 더욱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원금 손실이라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죠.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내가 산 가격을 고스란히 인정해 주지 않는 핵심 이유입니다.
모든 은행은 '국민은행'의 힘을 빌린다
재밌는 점은 대부분의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취급시 KB국민은행이 고시하는 이른바 'KB시세'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시중은행 내부에는 이른바 '부동산 전문가'들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모든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할 때에는 KB국민은행이 매주 내놓는 'KB시세'를 참고합니다.
모든 은행들이 KB시세를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이유를 함께 합니다. 지난 1997년 우리나라에 몰아닥친 외환위기(IMF)로 많은 은행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역사 속으로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이중에는 KB국민은행과 합병한 주택은행 역시 포함돼 있습니다. 주택은행은 KB국민은행 합병 이전 주택관련기금을 독점해 운영했습니다. 국민주택기금과 주택청약통장이 대표적이겠네요. 다시 말해 부동산에 돈을 대는 유일한 은행이었단 이야기입니다. ▷관련기사 : [은행, 주홍글씨 논란]①'공공성'을 요구하는 이유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택은행에는 전국 팔도의 부동산 데이터가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KB국민은행에는 이러한 부동산 인프라가 그대로 전해졌고 '부동산 강자'로 현재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KB국민은행은 전국에서 이뤄지는 아파트 등 주택거래 데이터를 부동산협력업체 등에서 수집해 매주 고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공되는 'KB시세'는 정부에서도 참고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기준이 됐습니다. 물론 다른 은행들 역시 주택가격에 대해 '직접' 시세를 매길 수는 있습니다. 최근 거래 데이터를 확보해 대출차주가 담보로 내건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면 되니까요.
다만 주택가격 평가시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 밖에 없습니다. 주택담보대출만 하더라도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는 대출차주와 리스크를 줄이려는 은행간 의견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종의 '통일'된 기준을 써야 하다보니 KB시세에 의존하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직접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 역시 은행들에게는 부담입니다.
부동산 시세 분야에서는 'KB시세'가 철옹성같이 버티고 있는 까닭입니다.
기술 타고 변하는 시대…AVM 등장
그런데 최근 부동산 '시세'를 정하는 데 새로운 바람이 부는 모습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AVM(Automated Valuation Model·부동산 가치 자동산정 시스템)입니다. AVM은 부동산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를 산출해 내는 기술을 이야기 합니다.
이같은 바람이 불 수 있었던 초석은 지난 2019년 마련됐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규제특례 제도인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50세대 미만 주택의 시세와 담보 가치를 산정할때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원래 금융회사는 50세대 미만 아파트와 같은 일부 부동산의 담보가격 산정시에는 △국세청 기준시가 △감정평가업자 감정평가액 △한국감정원 가격 △KB부동산 시세 등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시세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최근 카카오뱅크는 주택담보대출 취급 대상을 아파트에서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AVM을 활용하겠다고도 했습니다. AVM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겁니다.▷관련기사 : 윤호영 카뱅 대표, 건전성 우려 일축 "BIS 비율 높다"
AVM은 빅데이터와 머신러닝과 같은 디지털 신기술이 활용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담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뱅크가 주택담보대출 한도 및 금리 조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3분 29초라고 강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사실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등에서는 KB시세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동산 매물은 주변매물의 가치를 바탕으로 해당 매물의 가치를 평가하기 힘듭니다. 거래가 빈번하지도 않은 데다가 주택마다 특색이 너무나도 다르다보니 주변시세를 참고해 시세를 메기기힘들어서 입니다.
KB국민은행 역시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내어줄 때에는 KB시세를 참고하는 것이 아닌 한국감정원 등에 감정을 맡겨 가치를 다시 평가한 후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합니다. 카카오뱅크 또한 다세대 및 연립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취급시에만 AVM을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시작'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AVM이라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동산 가치 평가 기준이 만들어 진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 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다세대나 연립같이 사람이 직접 평가해야만 하는 물건에 대해서도 기술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가치를 평가해 기존의 굳혀진 틀을 깬다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AVM을 활용한 부동산 가치 평가가 적은 비용으로 매우 빠르게 부동산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 기존에 활용되던 다른 부동산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미국 등 IT선진국에서는 이미 AVM을 바탕으로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자리잡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간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 등 디지털 바람을 탄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될 때마다 과연 기존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서비스들이 기존의 서비스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AVM을 활용한 부동산 시세가 철옹성과 같은 'KB시세'를 위협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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