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실손의료보험 개혁방안(5세대 실손보험)은 앞선 세대와 비교해 보장 범위를 축소하는 게 골자다. 대신 임신과 출산 등 그 동안 보험에서 보장하지 않았던 항목을 새롭게 보장 범위에 포함하기로 했다.
정부의 구상대로 5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될 경우 금융당국은 4세대와 비교해 30~50% 가량 보험료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월 1만원 이하 실손보험도 나올 수 있다는 게 보험업계 분석이다.
적자 허덕이는 실손보험
표준화 이전인 1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을 보장하고 자기부담금이 없다. 2세대 초기 실손보험은 자기부담금이 도입됐지만 비용 부담이 적다.
이로 인해 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의료 쇼핑 현상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비급여 보험금은 8조원으로 전년보다 2% 증가했다. 비급여 주사료와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질환 치료가 각각 28.9%와 28.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당장 필요한 의료 행위는 아니지만 가격은 비싼 비급여 항목을 이용하는 가입자들로 인해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가입자 중 다수는 보험료만 납부하고 소수가 보험금을 지급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손보험을 두고 '도덕적 해이' 논란이 발생했던 이유다.
실제 실손보험 가입자의 65%는 보험금을 지급받은 적이 없고, 상위 9%가 지급보험금의 약 80%(4개 대형 보험사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비급여 항목을 축소하고 자기부담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실손보험을 개선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실손보험은 보험사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실손에선 적자를 떠안고 있고 손해율도 악화일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익은 1조9700억원 적자로 적자 폭이 전년보다 4400억원 증가했다. 경과손해율(발생손해액 대비 보험료수익)도 103.5%로 전년보다 2.1%포인트 상승했다.
실손보험의 이 같은 구조로 인해 보험업계에선 보험금 누수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정 가입자의 특정 질환에 대한 비급여로 보험금 누수가 심해 이에 대한 제어 필요성이 보험사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며 "대다수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보험금 누수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보험료만 계속 오르고 있어 이런 부분에 대한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5세대 실손, 만원 이하 보험료도 가능
이 같은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세대 실손보험은 중증과 일반 질환자로 구분한다. 급여 항목은 일반 질환자는 자기부담률이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같고 중증질환자는 최저 자기부담률(20%)만 적용해 4세대와 동일하다.
비급여의 경우 중증은 현행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한다. 일반 질환자는 보장 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줄이고, 자기부담률은 30%에서 50%로 늘린다. 중증 질환자의 경우 이전 세대와 같은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관련기사: '5세대 실손보험' 윤곽…도수치료 등 자기부담 최대 95%(1월9일)
이와 함께 임신과 출산을 신규 보장하기로 했다. 임신과 출산은 저출산 문제 해결 등 국가적 과제로 두터운 지원이 필요하고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5세대 실손이 이 같은 구조로 출시될 경우 가입자 자기부담금은 늘어나고 보장 범위도 크게 축소된다. 동시에 보험사들의 보장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가입자 보험료도 저렴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일부 보험사 대상 시뮬레이션 결과 특약2(비중증 비급여) 포함 시 보험료는 4세대 실손보험 대비 30% 내외, 특약 2를 제외하면 50% 내외로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4세대 보험료가 1만~2만원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세대 실손은 월 1만원 이하 보험료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 보험 전문가는 "소비자들은 같은 보험료에 보장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실손보험은 보장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보장이 두터울수록 보험료가 비싸지는 구조라 5세대 실손은 보장이 줄어드는 만큼 보험료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은 보장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손보험이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중증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금 누수를 줄이면 보험료가 감소하는 구조라 4세대와 비교해 절반 가량 보험료가 줄면 만원 안쪽일 것"이라며 "임신과 출산은 실손에 보장하려는 여러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 소비자도 필요했던 부분이라 이를 보장하는 것은 보험 상품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만 보험료가 저렴하더라도 이전 세대에 비해 보장이 크게 줄고 자기부담률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궁극적인 실손보험 개혁을 위해선 초기 세대 실손의 신규 세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급격한 보장 축소는 전환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