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다. 요즘 재계 사정이 딱 그렇다. 꿈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상황이다. 밖으로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거센 상황이다. 여기에 안으로는 ‘재벌 개혁’을 표방하는 문재인정부가 모진 각오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상생협력,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법인세 인상까지 나왔다. 시간을 갖고 충격을 씻어내도 모자랄 판에, 숨 고를 틈도 없다. 강력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와 부당 내부거래를 제대로 손보려고 벼르고 있다. 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재벌 총수일가 전횡 방지의 일환이다.
계열사들의 차고 넘치는 일감을 지렛대 삼아 손쉽게 재산을 불리고 2세들을 위한 대(代)물림의 도구로 사용해왔던 터라 응당 치러야 할 업보라고 친다지만 칼날의 강도를 종잡을 수 없는 탓에 ‘한 방에 훅 갈까’ 겁난다.
올 6월 취임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왜 자신이 ‘재벌 저격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확인시켜 줄 참이다. 이달 4일 재계 18위 대림을 타깃으로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취임 이후 하림(30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재계 저승사자’, ‘공정위의 중수부’로 불렸던 조사국의 후신(後身) 기업집단국을 이달 내로 출범시킨다. 재계의 내부거래 조사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선(戰線)도 넓어졌다.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에서 이제는 5조~10조원 준(準)대기업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당초 24곳에서 재계 57위까지의 49개(총수 없는 8곳 제외) 대기업이 망라된다.
‘일감몰아주기’로 통칭되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공정거래법 제23조의 2)는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 계열사(국내)가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즉, 총수일가 지분 20%(상장사 30%) 이상인 계열사와 ①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②사업기회의 제공 ③소위 ‘일감몰아주기’인 합리적 검토나 비교 없는 상당한 거래를 할 경우 제재가 따른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공정위가 모든 내부거래를 다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①·③의 경우는 기준을 정해놓고 있는데, ▲연간 거래금액 200억원이상 ▲평균(3년) 계열매출 12% 이상 ▲정상가격과의 거래조건의 차이 7% 이상 등 세 가지 중 단 하나만 해당돼도 공정위 조사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조사 결과 계열간 내부거래가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으로 귀속되지 않고, 효율성 증대·보안성·긴급성 등을 이유로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됐을 때만 제재를 피할 수 있다.
설령 총수일가 소유 지분이 낮아 사익편취 금지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맘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와는 별개로 ‘부당지원 금지 규제’(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로 제재를 받을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제는 오너 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를 대상으로 ①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는 물론 ②불필요한 거래 단계를 만들어 이익을 빼가는 소위 ‘통행세’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위반시 제재 수위가 만만찮다. 일감을 몰아준 쪽이나 받은 쪽이나 부당 행위로 발생한 매출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때려맞을 수 있다. 총수일가도 예외는 아니다. 부당 거래에 관여한 것이 드러나면 검찰 고발을 통해 형사처벌까지 당할 수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 이상의 내부거래가 있는 대기업으로서는 사정권에 들어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현대차 계열의 글로비스·이노션 처럼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총수일가 계열 지분 19%, 29%는 2015년 2월 본격적인 규제 시행으로 생긴 두려움의 결과물이다. 지분 매각, 합병 등 몸부림이 있었다.
SK의 SK디앤디, LG의 지흥처럼 계열과의 거래를 줄이거나 아예 뚝 끊은 곳도 상당수다. 한화의 한화에스앤씨(S&C)는 오는 10월 IT서비스 부문을 똑 떼내 표적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차 하다’ 공정위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곳 차츰 생기고 있다. 작년 5월 현대를 시작으로 CJ와 한진이 부당 내부거래로 많게는 72억원, 적게는 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CJ와 한진은 검찰고발로까지 이어졌다.
과거에 비해서는 양반이라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타깃이 되고 있는 대기업은 여전히 상존한다. 이달 1일 준대기업까지 지정되면서 사정권이 드는 계열사는 수두룩하다. 공정위가 칼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들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기획은 지난 6월14~20일 10대그룹을 대상으로 일감몰아주기 현황을 이슈별로 다뤘던 ‘[격변의 재계] 일감몰아주기’에 이은 후속 연재물이다. 대기업별로 일감몰아주기 계열사들을 점검한 ‘시즌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