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2월 문을 연 공익법인 일우재단은 28년 역사 가운데 지금 가장 두드러진 유명세를 타고 있다. 'Mrs.DDY'(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의 공식 직함이 일우재단 이사장이어서 연일 재단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명세와 달리 일우재단의 모습은 아직까지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비즈니스워치는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란 열 글자를 다시 생각해봤다. 재단이사장 이명희씨의 자격논란, 일우재단의 자산과 사업방식, 상식과 동떨어진 재단 규정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 서울 중구 서소문로 대한항공 빌딩 1층에 있는 일우재단의 전시관 일우스페이스 전경(사진= 이명근 기자) |
일우재단의 '일우(一宇)'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호(號)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른 대기업 공익재단도 총수의 이름이나 호를 가져다 재단 명칭으로 쓰곤 한다. 다만 이때는 재단 설립에 핵심 역할을 한 창업주의 이름이나 호를 재단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예컨대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아산’, LG연암문화재단의 ‘연암’은 각각 현대 정주영, LG 구인회 창업주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창업주는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 재단을 만들었다.
일우재단은 다르다. 재단 이름에 자신의 호를 넣은 조양호 회장은 물론 조 회장의 부인이자 현 재단 이사장 이명희씨, 그리고 이들 부부의 세 자녀 조현아·조원태·조현민씨는 일우재단을 만드는데 기여하지 않았다.
#창업주 세대 기부로 만든 재단
일우재단은 조양호 회장의 부친 고(故) 조중훈 한진 창업주가 19991년 대한항공 지분 23만7552주(출연당시 평가액 31억원), 사돈 최현열 CY그룹 명예회장이 현금 3억3000만원을 출연해 만든 곳이다. 최 회장은 조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친으로 당시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21세기한국연구재단'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일우재단은 이듬해인 1992년 2월 한진그룹 계열사 제동흥산(현 한국공항)이 233억원어치 제주도 서귀포·조천읍 일대 제동목장 땅(260만평)을 기증하면서 자산이 급격히 불어났다.
제동흥산이 제동목장 땅을 일우재단에 기증한 것은 당시 노태우정부의 5·8경제조치(대기업 비업무용자산 강제매각 명령)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의 칼날을 비켜가는 동시에 계열 공익재단에 부동산을 기증하면서 거액의 증여세를 피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조양호 회장이 재단 운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4월이다. 제동목장 증여 등을 계기로 재단의 틀이 잡혀가자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이후 2009년 3월까지 무려 14년간 이사장을 장기 연임했다. (14년 가운데 1년은 [한진 일우재단]①에 언급했듯이 조 회장이 사법처리를 받아 잠시 재단이사장직을 내려놓았다.)
조 회장의 뒤를 이은 인물은 부인 이명희씨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조 회장 부부가 총 24년간 일우재단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재단의 핵심 재산 목록은 변함없이 제동목장 땅과 대한항공 주식이다.
일우재단은 제동목장 땅을 가지고 계열사를 상대로 부동산임대업을 한다. 한국공항과 대한항공이 제동목장 땅을 빌려쓰는 대가로 재단에 임대료를 내고 재단은 임대료를 바탕으로 공익사업을 하고 있다. 창업주 세대가 기부한 재산으로 만들고 유지되어온 공익재단을 후대가 이사장직을 돌려 맡으면서 권한만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일감몰아주기 수혜 세자녀도 '기부금 0원'
비즈니스워치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일우재단이 국세청에 제출한 결산서류를 통해 기부 내역을 분석했다. 공익법인의 결산서류를 공개하는 제도는 2007년 말 상속세및증여세법 개정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10년간의 자료가 최대치다.
조양호 회장과 이명희 이사장은 이 기간 동안 재단 이사장직을 나눠서 맡았지만 개인 재산을 재단에 기부한 내역이 없다. 조 회장 부부의 세 자녀 조현아·조원태·조현민도 일우재단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았다.
특히 이 기간은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를 중심으로 한진가(家) 3세 소유 회사의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집중적으로 불거진 시기였다. 조 회장의 세 자녀 조현아·조원태·조현민은 이들 회사의 주요주주로 있으면서 막대한 부를 형성했고 후계승계를 위한 실탄을 마련했음에도 기부금은 0원이었다.
한진 총수 일가는 재단의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지만 일우재단 운영에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이명희씨가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재단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다.
#이명희 취임후 확 바뀐 재단 성격
이명희씨는 우선 이사장 취임 5개월만인 2009년 8월 재단이름을 바꿨다. 21세기한국연구재단에서 남편 조양호 회장의 호를 딴 지금의 일우재단으로 바꾼 게 이때다. 설립 때부터 18년간 사용해오던 이름을 갈아치운 것이다.
같은해 11월에는 재단의 주력사업을 장학사업에서 문화예술사업으로 변경했다. 장학재단을 미술관으로 바꾼 것. 당연히 일우재단의 공익사업 자금집행 내역은 크게 달라졌다.
이명희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 일우재단은 8억1580만원을 공익사업에 썼고 이중 79%인 6억4760만원을 장학·학술지원에 사용했다. 문화사업에는 8000만원만 썼다. 명실상부 장학재단이었다.
하지만 이씨의 등장 이후 문화사업 비중이 대폭 늘었다. 특히 사진·미술전시공간인 일우스페이스를 오픈한 2010년부터는 전체 공익사업비의 절반가량을 사진·전시사업에 사용해오고 있다.
이씨가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인 2008년부터 가장 최근인 2017년까지 10년간 일우재단은 연 평균 8억7200만원을 공익사업에 썼다. 연도별로 공익사업 집행 총액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재단이 쓸 수 있는 자금은 한정적인데 사용 내역만 달라진 것이다.
일우재단 관계자는 이러한 재단 사업 변경과 관련 "설립 이래로 장학사업 위주의 사업을 수행했으나 시대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문화 수요가 있다고 판단, 이에 부응하고자 재단 사업의 중심을 변경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일우재단이 다양한 문화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분야 중 사진은 조양호 회장의 취미로 알려져있고, 이명희 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미술 전공이다. 선대의 유산으로 이사장직을 돌려 맡으면서 장학사업 비중을 줄이고 개인 관심사업인 사진·전시 예산을 늘린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조 회장 부부의 기부내역은 없다. 권한만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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