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4위 LG의 ‘경영 대권’이 고(故)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41) LG전자 상무로 승계됨에 따라 LG는 빠른 속도로 구 상무를 정점으로 한 6인 부회장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 달 여 뒤 주주총회가 기폭제다.
LG 특유의 장자(長子) 승계 원칙에 따라 구 회장에 이어 바로 ‘4세 체제’로 넘어가 게 되면서 현재 유일한 오너 3세 경영자인 구본준 부회장 또한 짧은 기간 분가(分家)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 고(故) 구본준 LG그룹 회장. 구광모 LG전자 상무. |
◇ ㈜LG 대표 자리도 오르나
22일 재계에 따르면 지주회사 ㈜LG는 내달 2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사내 등기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주총 승인이 떨어지면 구 상무는 지난 20일 별세한 부친 구본무 회장을 대신해 현재 7명(사내 3명·사외 4명)인 ㈜LG 이사진 멤버로 새롭게 이름을 올리게 된다.
구 상무의 이사진 합류는 LG의 ‘경영 대권’이 고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상무로 승계됨으로써 오너 3세에서 4세로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23년만이다. 이제 명실상부한 LG의 ‘1인자’는 구 상무인 것이다.
구 상무가 등기임원에 오르면 곧바로 대표이사 타이틀을 달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금까지 ㈜LG가 오너 구 회장과 전문경영인 하현회 부회장이 각자대표를 맡아왔기 때문에 구 회장의 대표 자리도 자연스럽게 물려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LG 관계자도 “앞으로 경영체제 개편 과정에서 결정될 일이어서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주총 직후 구 상무의 대표 선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LG는 구광모 상무와 6인 부회장 체제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즉, 구 상무가 지주회사 이사회 멤버 자격으로 LG의 경영 현안과 신사업·투자를 총괄하고, 하현회(㈜LG), 조성진(LG전자), 박진수(LG화학), 한상범(LG디스플레이), 권영수(LG유플러스), 차석용(LG생활건강) 등의 부회장들이 주요 계열사를 책임경영하며 구 상무를 보좌하게 될 전망이다.
▲ LG 3세 경영인 구본준(사진) 부회장은 4세인 구광모 상무가 경영전면에 나서면 자연스럽게 분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 ‘구본준 체제’ 없이 세대교체
아울러 구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은 주총을 계기로 LG 경영에서 손을 떼고 독립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 부회장은 2016년부터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아 그룹의 먹거리 발굴을 책임졌으며 지난해부터는 와병 중인 형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 경영 전반을 관할해 왔다.
LG의 ‘2인자’로 통했던 구 부회장이 분가하게 되는 것은 LG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후계자가 낙점되면 선대의 형제는 경영에서 물러나는 원칙 불변의 과거 관례에 따른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구 회장 별세 이후 일정기간 구 부회장이 전권을 쥐는 ‘과도 체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구 상무가 40대 초반인데다 그룹 전체를 아우르며 의사결정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만큼 숙부인 구 부회장이 LG의 전면에 나서면서 동시에 구 상무 체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항을 맡지 않겠냐는 관측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LG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잠시라도 구 상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총 이후 구 상무 중심의 경영 체제가 완료되는 것과 동시에 계열분리든 독립이든 따로 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 1조원 ㈜LG 주식 분가 촉매
자연스레 구 부회장이 어떤 식으로 독립할지에 모아진다. 구 부회장은 ㈜LG의 지분 7.7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현 시세로 따지면 무려 1조원어치(21일 종가 7만8900원 기준)다. 이를 밑천 삼아 일부 계열사나 사업을 분리하는 재산분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현재 가장 ‘핫(hot)’하게 물망에 오르는 곳은 LG상사다. 구 부회장은 2007년부터 약 4년간 LG상사 대표이사로 몸담은 바 있다. 또 ㈜LG의 LG상사 지분(24.5%)의 가치가 2730억원 정도이고, 시가총액도 1조1000억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인수할 여력은 충분하다.
LG상사(소유지분 51%)가 비상장 물류업체 판토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2015년 5월 인수한 곳으로 LG전자, LG화학 등 계열 물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2017년 연결 영업이익 758억원)를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판토스는 구 상무를 비롯해 연경·연수 씨 등 구본무 회장의 자녀들도 지분 15%를 소유하고 있다. 구 부회장이 이들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자신이 보유한 ㈜LG 주식과 맞바꾸는 식으로 지배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판토스에는 이미 구 부회장의 자녀인 형모·연제 씨가 주주(지분 4.9%)로 등재돼있다.
다만 LG상사가 지주회사 체제로 편입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계열분리 카드를 꺼내기에는 시기상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아울러 구 부회장이 과거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필립스LCD 대표로 있었다는 점을 들어 LG디스플레이 계열분리 가능성도 회자되지만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LG그룹 전자부문의 핵심계열사인데다 계열분리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LG 관계자는 구 부회장의 재산분할에 대해 “구 부회장이 어떤 계열사를 분리해 독립할지와 구체적인 시기, 방법 등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