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차량은 올해 국내서만 32대가 불에 탔다. 뒤늦게 입장을 내놓은 BMW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부 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Exhaust Gas Recirculation) 결함만을 강변했다. 정부 대응 조치는 뒤늦은 리콜과 소유주 '운행 자제'라는 미봉책이 전부다.
▲ 서울 시내 한 건물 주차장에 BMW 차량이 별도 구역에 격리 주차돼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EGR은 주로 경유차량 배기가스에 질소산화물(NOx)을 줄이기 위해 장착되는 장치다. 엔진에서 빠져나온 배기가스 일부를 식혀 다시 엔진 연소실로 집어넣어 태우는 원리다. 다만 오염물질 배출과 함께 엔진출력도 낮춘다.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스캔들'은 이 장치를 시험장에서만 작동하게 해 대기오염 규제기준을 피하려 한 꼼수가 문제였다.
BMW는 이 EGR을 냉각수 침전물이 막아 과열로 화재가 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 일부 차종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왜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지, 어째서 2016년에 확인한 결함을 이제서야 대응하는지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100년 넘게 쌓아온 명차 브랜드가 뒤집어쓴 먹칠을 씻어내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폭스바겐 때를 상기하면 배상 등 소비자 피해 사후조치도 유야무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에 대한 BMW의 해명과 정부의 대응, 그럼에도 남는 답답한 점들을 짚어봤다.
▲ 요한 에벤비클러 BMW 본사 품질관리 수석부사장이 지난 6일 웨스틴조선 호텔서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최근 화재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① 화재 진짜 원인은
독일 BMW본사 요한 에벤비클러 품질관리 수석부사장이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설명한 요지는 이렇다. "EGR 쿨러(냉각기)에서 냉각수가 새어 나와 EGR 파이프와 흡기다기관 등에 침전물이 쌓였고, EGR 바이패스 밸브 오작동으로 인해 냉각되지 않은 고온의 배기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침전물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2012년부터 판 차들이 이제 와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부품 자체 문제만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서만 5대의 가솔린 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것 역시 EGR 결함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국토부도 "아직 EGR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특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라며 BMW에 추가자료를 요구한 상태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같은 스펙의 부품을 사용하는 디젤차량이 많다는 점에서 EGR 문제로만 볼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 목포에서 주행중 화재가 발생한 BMW 디젤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사진=국토교통부 제공 |
② 소프트웨어 조작 가능성은
일부 전문가들은 EGR 부품 자체가 아니라 이를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BMW가 국내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것이 EGR 과열로 연결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온도가 채 떨어지지 않은 과다한 배기가스가 EGR로 들어가 화재 원인이 됐다는 게 일각서 제기하는 추론이다.
하지만 에벤비클러 부사장은 "한국과 다른 해외 시장은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적용한다"며 "하드웨어도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혹을 털어내려면 한국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BMW 소프트웨어를 공개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③ 왜 한국에서만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왜 유독 한국에서만 화재사고가 집중되느냐'는 것이다. BMW측은 단기간 사고가 집중돼 한국에서만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평균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에벤비클러 부사장은 "흡기 다기관 천공 발생, 엔진실 연기 발생, 차량 연소 등 전체 단계를 통계적으로 봤을 때 BMW 차량의 한국에서의 결함률은 0.10%로, 글로벌 결함률 0.12%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BMW측이 언급한 결함률은 화재 통계가 아니라 EGR 결함과 관련된 모든 증상을 모은 수치였다.
BMW는 결함률을 산정한 기간과 기준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불렀다. 사실 왜 한국에서만 그런지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BMW측 역시 "한국에서 단기간 집중적으로 문제가 나타난 것에 대해선 계속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지난 6일 웨스틴조선 호텔서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최근 화재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읽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④ 왜 이제서야
BMW 측은 "흡기다기관 쪽에 작은 천공(구멍)이 형성되는 현상이 있다는 보고를 받아 원인 파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은 2016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원인을 몰랐고, 이것이 직접적인 화재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해 이제서야 조치에 나선 것이라고 해명했다.
에벤비클러 부사장은 "정확하게 확신을 갖고 문제를 파악한 시점은 올해 6월이었고, 문제가 복잡하고 여러 분석과 다각적인 조사가 필요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화재 문제가 이슈로 대두한 때 공교롭게도 때마침 BMW가 원인 규명을 마쳤다고 하는 게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일찍 자발적 리콜 등을 할 수 있는데 시간을 끌며 소비자들을 위험에 방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토부는 BMW가 결함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 늑장 조치를 했다면 과징금 등을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 김경욱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이 목포 옥암동서 운행 중에 화재가 발생한 BMW 디젤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와 구멍이 뚫린 흡기다기관을 공개하고 있다/사진= 국토교통부 제공 |
⑤ 정부마저 뒷북이라니
BMW는 렌터카 제공과 안전 진단 및 결함 정비로 대응중이다. 안전진단 후에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차로 교체해주겠다며 차량 소유주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국토부는 운행자제를 권고하고, BMW에 빠른 대응만을 요청할 뿐 더 이상의 조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고 가능성에 노출된 상황에 중고차 값까지 뚝뚝 떨어지는 상황을 맞은 BMW 차주들은 속에 천불이 날 지경이다.
당장은 배상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정부도 이제서야 제도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BMW 사태를 계기로 종합적인 리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조사가 고의적 불법행위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국토부는 이 외에도 리콜에 대한 자동차회사의 자료 제출 기준을 강화하고, 부실한 자료를 제출할 때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늑장 리콜'은 물론, 차량 결함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경우에도 매출액의 1%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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