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오는 29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구 회장은 안정적이고 보수적 색채가 강한 LG의 기업문화를 실리추구형으로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주력 사업 정리가 대표적이다. 핵심분야가 아니거나 '돈 먹는 하마' 역할을 하는 곳은 과감히 쳐냈다.
㈜LG·LG전자·LG화학이 연료전지 사업을 위해 25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LG퓨얼셀시스템즈'를 지난 2월 청산하기로 했고, 4월에는 LG디스플레이가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접었다. LG전자의 수처리 사업, LG이노텍의 스마트폰용 무선충전 사업도 정리대상에 포함했다.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의 베트남 이전에서도 실리추구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외부의 비판과 인력감축 등이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구 회장은 스마트폰 사업의 생존을 위해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16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새로운 먹거리 앞에서 좌고우면하던 모습도 확 달라졌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업체인 ZKW를 1조4440억원에 인수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LG화학은 미국 듀폰사의 솔루블 OLED 재료기술을 인수했고, LG생활건강은 미국의 화장품 회사인 '뉴에어본'을 사들였다. LG유플러스도 CJ헬로비전을 8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LG 관계자는 "ZKW 인수와 별도로 최근 1년간 LG 계열사들의 총 인수금액이 1조5000억원 이상 된다"며 "미래준비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고 말했다.
순혈주의도 균열을 냈다. 기존 사업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외부인사를 과감하게 채용했다. 대표적으로 3M 출신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을 들 수 있다. 신 부회장은 LG화학 창립 이래 첫 외부출신 CEO다. 그는 지난 4월 조직개편을 통해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LG화학의 사업포트폴리오를 재편 중이다.
지주회사인 ㈜LG에도 새로운 사람을 앉혔다.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베인앤컴퍼니 홍범식 대표를 영입했고,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인 김형남 부사장을 자동차부품팀장으로 데려왔다.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을 지낸 김이경 상무는 인재육성담당으로 영입했다.
구 회장이 그룹을 빠르게 장악하고 자신의 경영색채를 드러내기까지는 권영수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구 회장 취임 2주만에 이뤄진 원포인트 인사로 ㈜LG 대표이사를 맡은 권 부회장은 구 회장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사안을 속전속결로 정리했다.
일례로 일감 몰아주기 차단을 꼽을 수 있다. 구 회장 등 LG그룹 특수관계인은 지난해 10월 물류계열사 판토스의 지분 전량(19.9%)을 매각했다. 구 회장 등의 지분 19.9%는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기준인 20%에는 못 미치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전량매각이라는 결정이 이뤄졌다.
㈜LG는 올해 2월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사업을 분할해 사모펀드에 넘긴데 이어 현재 LG CNS 지분 일부 매각을 추진 중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기업이 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보유할 경우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선제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권 부회장은 숫자에 강한 재무통인데다 전자·디스플레이·화학·통신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두루 맡아 현안에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 취임 후 변화는 올해 연말 인사에서 재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권영수·조성진·차석용·하현회·한상범 등 지금의 부회장단은 아버지 시대의 인물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선 이들을 유임시켰다. 취임 2년차를 맞은 올해는 부회장단에 변화를 줘 '구광모 시대'를 각인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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