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갤럭시S20'와 애플 '아이폰SE'의 엇갈린 판매 성과가 부품사들의 실적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전반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자, 두 모델의 판매량이 주력 부품 업체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실적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올해 하반기는 두 부품사 모두 지난 상반기보다 사업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애플의 부품 구매 전략 변화와 함께 삼성전기도 아이폰 부품공급업체로 포함되면서 두 부품사 사이에 '묘한 긴장감'도 흐르고 있다.
◇고객 실적 따라 실적 '희비'
삼성전기는 지난 2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8122억원, 영업이익 96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익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9%, 42% 감소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5%, 41% 줄었다. 코로나19와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카메라 및 통신 모듈 공급이 감소한 탓이 컸다는 게 이 회사 설명이다.
삼성전기의 카메라모듈과 통신모듈을 담당하는 모듈사업부의 2분기 매출액은 6048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8% 쪼그라들었다. 조국환 삼성전기 전략마케팅실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계절적 요인에 따른 스마트폰 수요 감소로 모듈사업부의 2분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LG이노텍은 같은 기간(2분기) 매출 1조5399억원, 영업이익 429억원의 실적을 냈다. 역시 코로나 탓에 직전 분기와 비교했을 때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3.4%, 68.9% 줄었다. 하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128.7% 증가했다. 특히 카메라모듈 사업이 포함된 광학솔루션 사업부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2% 늘어난 9296억원을 기록했다.
LG이노텍 측은 "2분기는 통상적으로 카메라모듈의 수요가 줄어드는 시기지만, 고화소 카메라모듈과 3차원(3D) 센싱모듈 등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생산관리를 하면서 시장 우려에 비해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매출 차이 1년 사이 '68억→3248억원'
두 부품사의 실적이 이 같은 온도차를 보인 것은 이들의 주요 거래선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판매성과 차이에서 나온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주력인 카메라모듈 사업은 고객사 스마트폰 신제품 판매량의 영향을 받는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 LG이노텍은 애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통상적으로 삼성전자는 상반기 '갤럭시S' 시리즈, 하반기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선보인다. 갤럭시S 시리즈의 물량은 갤럭시노트 시리즈에 비해 연간 3000만대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기 모듈솔루션 사업부의 실적이 '상고하저'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LG이노텍의 경우 하반기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하는 애플의 영향을 받아 '상저하고'의 실적 흐름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기의 이번 실적은 '뼈 아픈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2분기 삼성전기 모듈솔루션 사업부(8243억원)와 LG이노텍 광학솔루션 사업부(8301억원)는 매출 차이가 불과 68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2분기에는 그 격차가 3000억원대로 벌어졌다.
이는 삼성전자 '갤럭시S20'가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으며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낸 영향이다. 갤럭시S20 시리즈의 판매량은 출시 16주차까지 놓고 볼 때 전작인 S10 판매량의 67%에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옴니아에 따르면 갤럭시 S20 시리즈의 지난 1분기 판매량은 820만대로 갤럭시S10 시리즈 판매량(1030만대)보다 35%가량 감소했는데, 이 분위기가 2분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에 비해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11의 꾸준한 인기와 더불어, 4년 만에 선보인 보급형 아이폰 '아이폰SE'가 선전하면서 코로나19의 여파를 다소나마 비껴갈 수 있었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 인텔리전스 리서치 파트너스에 따르면 1분기 아이폰 구매자의 5분의1이 아이폰SE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 들어가는 카메라모듈이 LG이노텍 제품이다.
◇하반기는 둘 다 애플 덕볼까?
2분기까지의 실적은 엇갈렸지만 하반기 실적은 둘 모두 밝은 편이다. 내달 5일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20 등 신제품 공개를 앞두고 있고, 애플도 오는 9월8일 아이폰 신제품을 발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서다.
침체됐던 스마트폰 시장이 점차 코로나19 타격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에 접어든 것도 양사에 희소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의 월간 보고서 마켓펄스는 지난달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월 대비 33% 증가했다고 밝혔다. 크게 위축됐던 스마트폰 시장이 지난 4월 저점을 찍은 뒤 2개월 동안 강하게 반등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기도 애플의 신규 렌즈 공급사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리며 실적 기대감을 함께 키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애플의 보급형 아이폰에 렌즈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기가 애플의 렌즈 공급사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기로서는 갤럭시 일변도의 사업의존도를 낮추고 추후 사업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LG이노텍도 미중 분쟁 속에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상무부가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던 중국 기업 '오필름테크'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애플이 삼성전기에 렌즈뿐만 아니라 카메라모듈까지 주문할 수 있다는 관측은 LG이노텍을 불편하게 한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의 역할이 렌즈와 액츄에이터(Actuator·기계장치)에만 한정된다면 LG이노텍 입장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삼성전기가 카메라모듈까지 공급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것이 현실화 될 경우 신기술 모듈에서 LG이노텍이 갖던 압도적 지위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