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을 한 달여 앞두고도 오히려 일촉즉발의 대립 구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 SK, 수세 몰리자 강공 전환
LG와 SK 간 최근 갈등은 '지류' 성격인 특허침해 소송전 과정에서 불거졌다. 두 회사는 지난 4일과 6일에만 각각 두 차례 입장문을 내며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다. 앞서 LG화학은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건으로 ITC,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같은 해 9월 2차전지 특허침해를 이유로 같은 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LG화학은 소송을 제기한 상대사가 오히려 자사 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SK이노베이션이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는 LG화학이 보유하고 있었던 선행기술"이라며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출원한 2015년 6월 이전에 이미 해당 기술을 탑재한 자사의 배터리 셀을 크라이슬러에 여러 차례 판매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이 같은 사실을 숨기고자 소송 과정에 증거를 인멸한 과정을 포착, 지난달 28일 ITC에 제재를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올해 2월뿐 아니라 ITC 행정판사가 3월 소송 관련 문서 제출을 명령한 후에도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선행기술 관련 문서와 이메일을 삭제해 ITC의 명령을 위반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LG화학의 주장에 SK이노베이션은 강공 모드로 돌아섰다. SK는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해 LG화학이 ITC에 제재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도 직접적 입장 표명을 자제해오고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LG화학 선행기술을 SK이노베이션이 가져가 특허 등록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생억지'라고도 표현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는 SK의 특허출원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출하지 않았다"며 "만일 해당 특허가 선행 기술이라면, 그리고 이를 알았다면 특허제도상 앞으로 무효가 될 게 확실한 특허를 출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SK는 "SK이노베이션이 선행 특허 관련 증거를 인멸했다"는 LG의 주장에 대해서도 "ITC의 명령으로 SK 내에서 LG 측 전문가가 약 2개월 간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기기에서 삭제된 정보 복구)을 진행했지만, SK가 해당 특허에 LG의 정보를 참조했거나, 사실을 은폐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극한대립' 합의 이뤄질까
이같이 두 회사가 '강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합의금 규모를 둘러싼 신경전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달 중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 전 LG는 합의금을 높이고, SK는 합의금을 낮추려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ITC가 올 초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결정을 최종 판결까지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LG와 SK는 합의금을 어느 정도 규모로 맞출지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수 조원대의 금액을, SK는 1조원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바라며 양사간 눈 높이가 맞춰지지 못한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그러다 지난달 27일 SK이노베이션이 서울중앙지법에서 '특허침해 관련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소송' 1심 패소 판결까지 받자 양사 간 장외 여론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평가다.
만일 SK가 ITC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는다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델라웨아주 연방지방법원이 ITC 판결을 준용할 경우 SK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 등 미국 수입절차가 전면 금지된다. 고객사 폭스바겐과의 배터리 공급 계약에 제동이 걸리는 셈이다.
이 경우 지난해 연간 8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올 상반기에도 SK이노베이션은 전지 부문을 포함한 기타 사업(소재 사업 및 스태프 비용 포함)에서 상반기 매출 7367억원, 영업손실 2187억원을 기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 두달 전만 해도 양사 안팎에서 1조~2조원 범위에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금액차를 둘러싸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여론전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종 판결 전 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K는 분리막, 동박 등 배터리 소재를 LG에 공급하고 있는 만큼 합의금을 낮출 지렛대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라며 "반면 LG 입장에서는 업계 1위 위신이 있는 만큼 합의금을 최대한 늘리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