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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삼색', 배터리 3사 차별화 전략

  • 2020.07.09(목) 16:33

LG, 점유율 급상승...탄탄한 기반
삼성, 내실 다지기...SK, 신흥강자

전기차 생태계는 흔히 알려진 구매사와 납품사간 '갑을 관계'가 깨졌다. 전기차를 만드는 완성차사가 부품인 배터리 구매대금을 건내는 구매사임에도, 돈을 받는 배터리 제조업체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전기차 배터리의 높은 기술력과 품질을 맞출 수 있는 배터리 제조사가 드물어서다. 2개월여 만에 막을 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직접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 사업장으로 넘어가 총수와 '연쇄 회동'을 한 것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힘깨나 쓰는 을' 배터리 3사의 위상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차는 물론 미국 제너럴 모터스(GM), 독일 폭스바겐 등 해외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 제품이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게 된 데는 각양각색의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볼 개연성이 크다.

◇ LG, '더 높게'

LG화학은 선두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2017년 4위에서 지난해 3위, 올해 1위로 등극한 것도 확장적 사업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기간 점유율은 8.5%에서 24.2%로 3배 가까이 뛰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통형 배터리 채택이다. LG화학은 지난해부터 중국 테슬라 공장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며 점유율을 급속도로 끌어 올렸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주력 제품군을 확대하는 과감한 전략이다. 

그간 LG화학은 파우치형 전기차 배터리가 주력이었고, 원통형 배터리에 대해선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원통형 배터리는 수천개의 좁은 캔 안에 에너지 밀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야 하는 만큼 화재 위험성이 높다고 알려졌다. 

아울러 LG화학은 이전과 달리 중국 현지 회사와 손을 잡고 있다. 중국 토종 완성차업체 가운데 현지 점유율 1위 지리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지난해 6월 발표했다. 2021년말까지 연간 10기가와트시(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연간 15만대의 고성능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규모다. LG화학은 기술유출 우려로 그간 중국 업체와 손을 잡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전략 변경은 LG화학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LG화학은 한국에 더해 전세계 3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에 생산기지를 갖춘 유일한 업체다. 언제든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 점유율을 높일 기반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그룹에서 LG화학 배터리 점유율을 최대한 높이라고 지시했다고 알고 있다"며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 부문 분사 후 재상장 등 사업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 '지름길 아닌 큰 길로'

삼성SDI는 다른 국내 업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성장세를 보인다. 심상SDI의 올해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위로 3년 전과 동일하다. SK이노베이션의 급성장, 2017년 4위였던 LG화학이 올해 들어 점유율 1위까지 치고 들어간 것과 대조적이다.

이같은 삼성SDI의 행보에 대해 '내실을 키우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리하게 저가 수주 등을 일삼아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는 대신에, 안정적 수익을 내는 계약 위주로 사업을 끌어간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5월 27일(현지시간) 고객사 폭스바겐이 삼성SDI로부터 20GWh 규모 배터리를 공급받길 원했지만, 실제 공급이 보장되는 규모는 4분의 1인 5GWh에 그친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수익성 중심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이를 꼽았다.(관련기사 : [CEO&]전영현 삼성SDI 사장의 '정중동(靜中動)')

삼성SDI의 이같은 전략은 나름 이유가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연간 적자를 보기 때문에, 사업 영속성을 담보할 전략이 필요해서다. 사업을 시작한 수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내 업체 가운데 LG화학만이 지난해 4분기에야 간신히 분기 흑자를 거뒀다. 국내 3사 모두 석유화학, 소형전지 등 기존 사업에서 거둔 이익으로 전기차 배터리에서 적자를 메꾸는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질적 성장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성장에만 목표를 두기보다는 시장을 리딩하는 차별화된 기술 확보로 수익성에 바탕을 둔 질 중심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2008년 독일 보쉬와 합작해 만들었던 울산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입은 2017년 1분기 5000억원대의 손실 등이 삼성SDI가 채택한 신중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SK, '급속 확장'

SK이노베이션은 급속도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과거 출고량 기준 전세계 20위권에도 들지 못하다가 2년 전인 2018년 점유율 0.8%로 16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1.9%(10위), 올해 1~5월 4.1%(7위)로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선두주자 LG화학과 삼성SDI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지 3년 이상 뒤진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추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한 데는 '공격적 수주전략과 빠른 기술력 제고'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례로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이 독일 폭스바겐으로부터 따낸 미국 현지 배터리 공급계약이 대표적이다. 당초 미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기지가 있는 LG화학이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SK이노베이션의 납품 단가인하, 현지 배터리 공장 건설 제안 등이 폭스바겐의 구미를 당겼다는 후문이다. LG화학과의 소송전 등 갈등이 촉발된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외국 업체와 손잡고 과감하게 합작회사도 설립했다. 2018년 중국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해 장쑤성 창저우시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합작사는 약 8200억원을 투자해 연산 전기차 배터리 7.5GWh를 생산한다. 전기차 연간 25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물량이다. 전기차 업체는 안정적 공급량을 확보하고,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는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함에 따라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다.

국내사가 중국 배터리 업체와 손잡고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해당 건이 처음이었다. 그간 국내사들은 중국 기업의 기술유출 가능성을 우려해 현지 기업과 손잡는 것을 꺼려했다.

높은 기술력도 눈에 띈다. SK이노베이션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속하는 삼원계(출력을 내는 양극재에 코발트 함유) 배터리에서 코발트 함량을 20%로 줄인 배터리를 2012년, 다시 코발트 함량을 절반인 10%로 줄인 배터리를 그로부터 4년 뒤인 2016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코발트는 전세계 공급량의 과반 이상을 담당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등의 이유로 수급이 어렵다. 이 때문에 배터리 원가의 40%를 코발트 홀로 차지해, 배터리에서 코발트 함유량을 줄이는 것이 배터리 업계의 주요 과제였다.

◇ '협상력이 중요'

하지만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의 '공개 손짓'이 마냥 국내 배터리 업계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밀주의'를 유지하던 거래관계를 깬 것부터가 공개적으로 협상 단가를 인하시키겠다는 압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거리낌 없이 거래 상대방과 계약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GM, 폭스바겐 등은 최근 공개적으로 거래처와 배터리 성능, 납품단가를 대놓고 알리고 다닌다고 알려졌다. 언론에 정보를 흘려 납품사 간 경쟁을 유도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전기차 원가의 40%에 육박하는 배터리 단가를 낮춰야 한다"며 "배터리 업계로서는 기술개발, 생산능력 확충에 더해 또 다른 협상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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