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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공백…다시 멈춘 삼성의 시계

  • 2021.01.18(월) 18:02

2년6개월 징역형…준법위 활동 불구 실형
삼성 '비상경영'…계열사 각개전투 불가피
재계 "경제 악영향 우려"…노동계 "거듭나길"

마지막 호소는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의 요구에 따라 그룹 경영에 부정을 막는 시스템을 새로 갖추고, 본인 스스로도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수 차례 바뀌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했다. 18일 오후 1시40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취재진 앞에서 침묵만 남긴 채 법정으로 들어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판이 끝난 뒤에는 카메라 앞에 다시 서지 못했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지 약 3년 만의 재수감이다. 삼성은 4년여 만에 전보다 더 긴 총수 공백상태를 맞게 됐다. 관련기사☞ [CEO씽킹맵]이재용의 1년, 삼성의 10년

18일 서울고법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8일 서울고법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2년6개월 실형…"준법위 참작 부적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후 열린 국정농단 연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건넸다가 돌려받은 말의 몰수를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이 부회장은 선고공판 뒤 바로 법정 구속됐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작량경감의 요건으로 제시한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서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삼성의 진정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 사건에서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특히 "준법감시위는 일상적인 준법감시 활동과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위법행위 유형에 대한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행동을 선제적으로 감시하는 활동까지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구속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은 이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거친 만큼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4년간 진행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연루 재판이 재구속으로 마무리되는 수순이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1심 당시 법정구속되며 약 1년의 실형을 거쳤기 때문에 남은 형량을 채워야 한다.

이 부회장측 법무법인 태평양 이인재 변호사는 판결 후 취재진들에게 "이 사건의 본질은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그런 점을 고려해볼 때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재상고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 삼성 '초비상'…사업지원TF도 위축

삼성은 그렇게 염려하던 총수 부재를 현실로 맞게 됐다. 삼성은 앞서 2017년 2월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됐을 때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이어 2018년 2월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로는 이 부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판단을 서로 보완하는 구조로 경영이 이뤄져왔다. 앞으로는 각 계열사 CEO들의 개별적 경영판단 비중이 더 높아지게 됐다.

과거에는 총수와 각 계열사를 그룹 미래전략실이 있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해체됐고, 현재는 신설된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계열사간 조율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 핵심 측근인 정현호 사장이 이끄는 TF다. 하지만 이 역시 재판과정에서 '미전실의 부활'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어 적극적인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 이후 대규모 투자 등 그룹 전반에 걸친 핵심 사안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총수 공백 시 대규모 투자, 인사 등의 사안이 지체되거나 차질을 빚었던 전례가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재판 대응과 현장 경영 속에서 미래 신사업 확대, 자랑스러운 삼성 만들기 등 '뉴 삼성'으로 변화에 주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공백으로 변화에 탄력이 저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구속과 별개의 사건인 '삼성물산 합병 및 불법 승계' 혐의 재판도 앞두고 있다.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며, 작년 9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그를 불구속기소한 상태다. 관련기사☞ 이재용 결국 기소…삼성 다시 '시계제로'

◇ 재계는 '충격'…노동계 "형량 부족"

재계는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이 부회장은 코로나발 경제위기 속에서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진두지휘하며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조해 왔는데 구속 판결이 나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 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것은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의 산업 패러다임 시기에 신사업 성장의 중요한 역할에 있어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으로 중대한 사업 결정과 투자가 지연됨에 따라 경제·산업 전반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반면 노동계의 분위기는 다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특검의 구형에 비하면 부족한 선고 형량"이라며 "이재용 부회장 일가와 삼성 자본은 재판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최종 선고에서 뇌물수수 유죄가 인정됐던 만큼 삼성에 대한 유죄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이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밝힌 것처럼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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