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11일)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한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돈이 81조원이나 몰렸대요. 무려 81조라니, 10억원짜리 아파트를 8만채도 넘게 살 수 있는 돈이네요. 이런 막대한 공모 자금을 끌어모은 주인공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라는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이에요. SK이노베이션의 소재사업 자회사죠. 뭐 하는 기업이길래 이렇게 많은 관심과 돈이 몰린 걸까요?
이 회사의 주 사업은 분리막(Lithium-ion Battery Separator, LiBS)이란 걸 만드는 거래요. 전기차, 휴대폰,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2차전지(충전형 배터리)가 뜬지 오래잖아요. 분리막은 2차전지 일종인 리튬이온배터리에 들어가는 4가지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죠. 4가지는 배터리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양극(Cathode)', 전류를 유도하는 '음극(Anode)', 리튬이온의 이동을 돕는 매개 액체인 '전해질(Electrolyte)', 그리고 양극재와 음극재를 갈라놓는 '분리막(Separator)'이에요.
분리막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볼게요. 생긴 건 얇은 불투명한 비닐, 필름처럼 생겼어요.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지 않도록 차단하는 절연 소재의 얇은 막이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게 완전히 막는 건 아니에요. 분리막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공기구멍(pore)이 있어요. 이 구멍으로 배터리 셀 속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며 충전과 방전이 되는 거래요. 배터리 셀 외부로 연결된 도선을 통해서는 전류가 흐르는 거고요.
분리막이 왜 필요하냐고요?
배터리 셀 안에서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면 도선을 통해 전류가 흐르지 않거나, 반응에 의해 불이 날 수 있어요. 그래서 배터리의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내부의 분리막의 미세 구멍이 막혀 내부 단락을 방지하기도 해요. 또 셀 안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 찌꺼기(부산물)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물질 등을 막아 안전성을 확보하죠.
작년 크게 불거진 현대자동차 코나 전기차(EV)의 화재 논란 때도 한때 이 분리막이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었죠. 조사 초기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코나 배터리 셀의 제조 공정상 품질 불량으로 인한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의 분리막 손상'을 유력한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어요. 배터리 제조사는 LG화학(현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이었죠.▷관련기사: '현대차 코나' 문제일까 'LG 배터리' 불량일까(20년 10월12일)
잠깐 중간 정리를 해 보자면, 분리막은 배터리의 안전성을 담당하는 핵심 소재란 얘기예요. 그렇다고 안전만 책임지는 건 아니에요. 막이 두꺼우면 이온 이동이 쉽지 않아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거든요. 그러니 얇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드는 게 관건인 셈이죠. 분리막은 배터리 원가의 약 15~20%를 차지한대요.
그렇다면 분리막은 어떻게 만들까요?
소재로는 폴리올레핀(PO), 폴리프로필렌(PP)같이 절연 특성이 뛰어난 고분자 화합물이 사용된다고 해요. 이 소재들을 뜨겁게 만든 상태에서 잡아당기는 걸 연신(延伸, Stretching)이라고 하는데요. 이 공정을 통해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내는 거죠.
구멍을 만드는 방식에 따라 분리막은 건식(Dry)과 습식(Wet)으로 나눠요. 건식은 기계적인 힘으로 필름 원단을 당겨 기공을 만든 걸 말하고요, 습식은 필름에 여러 첨가제를 추가해 화학적으로 기공을 만든 걸 말해요.
딱 봐도 건식이 간단하죠? 하지만 기공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습식에 비해 강도도 약해요. 반면 습식은 제조공정이 복잡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기공의 크기를 균일하게 만들 수 있고 더 튼튼해요. 그래서 주로 작은 제품, 고용량·고출력과 안정성이 필요한 비싼 배터리에 많이 쓰인대요. 건식은 부피가 큰 대형에너지저장장치(ESS)에 많이 쓰이고요.
예전 분리막은 건식·습식 등으로 만든 1차적 원단 '베이스 필름'을 그대로 사용됐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아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원단에 코팅해 분리막의 성능을 더욱 키우는 거죠.
코팅은 내열 코팅과 접착 코팅으로 나눌 수 있대요. 내열 코팅은 고온에서 분리막 원단 필름에 세라믹 등의 입자를 코팅해 분리막 원단의 수축을 억제하는 방식이에요. 접착 방식은 극판과 분리막 원단 필름을 딱 붙여 안전성을 높이고 셀 변형을 방지하는 방식이라고 하네요.
SKIET에 돈이 우르르 몰린 이유요?
우리나라에서 분리막 생산에는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기업이라서래요. 해외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등에 쓰이는 고품질 분리막 시장(티어1 그룹)에서는 작년 26.5%의 점유율로 1위(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 조사)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이 회사는 4마이크로미터(㎛) 수준의 고품질 분리막을 제작할 수 있대요. 연신 공정에서는 축차(逐次)연신, 코팅 공정에선 세라믹코팅분리막(Ceramic Coated Separator, CCS)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군요.
축차연신은 생산기계와 같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세로 방향 연신과 그와 수직인 가로(폭) 방향 연신을 차례로 진행하는 방식인데, 연신비율을 자유롭게 조절해 고객사가 원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대요. CCS는 습식 분리막 원단에 고운 세라믹 가루를 뿌려 입히는 건데, 그러면 이온 이동은 더 쉽게 하면서도 열과 힘을 잘 견딘다고 하네요.
원래 분리막은 소수의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던 사업 분야예요. 일본 아사히카세이, 도레이 등이 먼저 분리막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죠. 우리나라에서도 2차전지 제조 기업들 사이에 부쩍 관심이 많아요. 삼성SDI는 초고내열성 분리막을 개발했고, 접착분리막도 제품에 적용하고 있대요. LG의 경우 LG전자에서 분리막을 일부 생산해 LG화학에 공급했는데, 곧 관련 사업을 LG화학으로 이관한다는 소식도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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