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일본 도레이와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양사는 약 1조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공장을 짓고 유럽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LG화학의 배터리 제조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생산 기지와 가까운 입지다.
LG화학과 도레이는 합작을 통해 분리막 사업자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 SK이노베이션 자회사)와 경쟁에 나서게 됐다. 과거 SK와 배터리 사업 관련 특허를 두고 소송전을 벌인 악연이 있는 두 회사가 손을 잡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LG화학, 6400억 투자 분리막 사업 본격화
LG화학은 일본 도레이와 손잡고 헝가리에 이차전지용 분리막 합작법인(LG Toray Hungary Battery Separator Kft)을 설립한다고 27일 밝혔다. 합작법인은 50 대 50 지분율로 세워진다. 30개월 후 LG화학이 도레이 지분 20%를 추가로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했다. 양사는 총 1조원 이상을 단계적으로 투자하는데, LG화학은 지분 70% 인수에만 현금 6427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장은 헝가리 북서부 코마롬-에스테르곰주 뉠게주우이팔루시에 있는 기존 도레이 관계회사(Toray Industries Hungary Kft) 공장 부지에 설립된다. 도레이가 현물로 출자하는 자산이다. 총 면적은 42만m²로, 축구장 60개 정도 규모다.
이 공장에서 양사는 내년 상반기 중 라인 증설에 들어가고, 오는 2028년까지 연간 8억m² 이상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양산된 분리막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 등에 공급된다.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
양사는 각사의 강점을 활용해 유럽 전기차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로 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올해 82기가와트시(GWh)에서 오는 2026년 410GWh로 연평균 38% 성장이 예상된다. 합작공장이 설립되는 헝가리는 유럽 내 물류 편의성이 우수하고 글로벌 자동차 기업과 LG화학의 주요 고객사들도 인접했다.
아울러 도레이는 내열 특성이 우수한 안전성 강화 3겹 분리막 등 다수의 원천 특허를 바탕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LG화학은 분리막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SRS(안전성 강화 분리막) 기술을 도레이와 공동 보유하고, 국내 청주를 비롯해 중국 항저우·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코팅 생산 라인을 운영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합작에 대해 "도레이는 LG화학의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기반으로 유럽 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고, LG화학의 경우 분리막의 핵심 소재인 원단 기술력 내재화를 통해 글로벌 전기차 생산 거점인 유럽 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도레이, SKIET 잡을까
양사는 모두 과거 SK이노베이션과의 특허 분쟁을 겪은 '악연'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04년 분리막 생산 기술을 국내 처음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하고 관련 사업에 나섰는데, 당시 글로벌 선두 기업 중 하나였던 도레이가 2006년 SK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법정에서 난 결론은 SK 승소였다.
LG화학은 2011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분리막을 비롯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해 다퉜고, 2019년부터 다시 미국에서 특허분쟁을 벌이다가 올해 초 LG가 SK로부터 합의금 2조원을 받는 것으로 소송전을 마무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LG화학과 도레이가 분리막 분야에서 손잡은 것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의 분리막 계열사인 SK IET는 글로벌 선두권 전기차 사업자에 공급하는 '티어1(Tier1) 습식 분리막' 시장에서 점유율 26.5%로 세계 1위다. SK IET가 최근 폴란드에 준공한 분리막 제1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3억4000만m² 수준이며, 이 회사는 오는 2024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유럽에서만 15억4000만m² 규모의 생산역량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LG화학과 도레이의 합작 제품도 습식 분리막이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이번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하며 "분리막 사업을 적극 육성해 세계 1위 종합 전지 소재회사로 도약한다"고 밝히며 본격 경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