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오는 20일(이하 현지시간)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기업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자동차 업체를 불러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가 어떤 주문을 받을지다. 지난달 미국 백악관 주재로 유사한 주제의 회의를 개최한지 한달여 만에 또 열리는데다,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남기고 개최된다는 점에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있다.
◇ 왜 또 불렀나
12일 블룸버그, 로이터 등 주요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오는 20일 삼성전자, 인텔, TSMC, 구글, 아마존, GM, 포드 등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반도체 공급망 관련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미국 상무부와 삼성전자는 이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으나, 국내 업계는 이번 회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 회의가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놓고 '열린 대화'(open dialogue)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참석 업체들과는 사전에 의제를 조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초청 명단에 포함된 곳들은 지난 12일 백악관 주재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을 위한 CEO 회의'에 참석했던 기업들이다. 참석자가 대체로 비슷한 만큼 앞서 열린 회의 내용을 추가 논의할 가능성이 높지만 또 다른 주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반도체 회의에서 모두발언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세기 중반부터 세계를 이끈 미국은 21세기도 다시 이끌 것"이라며 "우리의 경쟁력은 여러분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자국 내 투자 확대를 강조한 바 있다.
◇ 이번에는 답해야 하나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미국 정부의 투자 요구 압력이 지난 회의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회의 직후 인텔과 TSMC 등 일부 업체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화답하듯 반도체 공장증설 등 투자 확대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답을 내놓지 못했는데 그사이 미국 내 고용은 더 부진해진 상황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일자리 증가 규모는 약 27만개에 그치면서 기존 예상치 100만개를 크게 밑돌았다. 20일 회의를 주재하는 지나 레이몬도 장관도 MSNBC, CBS 등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 공급난이 4월 고용지표를 악화시킨 이유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 자동차 업체들이 반도체 공급 부족 탓에 공장 가동을 못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미국 내 반도체 공장증설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삼성은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중인 미국 오스틴과 다른 지역을 놓고 약 20조원(17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증설을 고민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까지 투자지역을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정부의 투자 요청이 삼성전자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R&D) 지원에 대한 예산만 500억달러(약 56조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몬도 장관이 최근 진행한 언론 인터뷰를 보면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는 구체적 숫자까지 언급하며 민간영역의 투자확대를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CBS 프로그램 '페이스더네이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일자리 계획에 따라 반도체 분야에 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최우선 순위의 사안"이라면서 "민간에서도 500억 또는 1000억달러가 투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한미 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어 삼성전자가 받는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경영계획을 특별한 사업적 계산 없이 갑자기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투자가 이뤄질 때까지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