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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상장 바이오]③정비 나섰지만…'제대로' 변해야 산다

  • 2022.11.07(월) 06:50

기술평가모델 '표준화' 두고 거래소-산업계 '시각차'
"상장폐지 활성화로 특례상장 실효성 높여야" 주장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특례상장 제도는 수익성은 부족하지만 기술성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의 상장 문턱을 낮춘 제도다. 제도 도입 후 17년간 수많은 바이오 기업이 기술평가특례나 성장성 추천 제도를 기업공개(IPO)의 주요 통로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신약 개발 성과를 낸 바이오 기업은 없다. 투자자 보호와 신사업 육성 측면에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례상장 제도의 성과와 문제점, 개선 방향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특례상장 제도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거래소는 기술평가모델 정비 작업에 나섰다. 기술평가의 평가 기준을 표준화해 특례상장 제도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바이오 업계에선 기술평가모델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부실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준화로 신뢰도 제고" vs "제도 취지 훼손 우려"

올해 거래소는 삼일회계법인과 함께 새로운 기술평가모델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개정의 핵심은 '표준화'다. 평가기관별로 평가 기준이 달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반영, 업종별 평가 기준을 통일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의료기기 같은 융복합 업종을 위한 평가지표도 마련한다. 또 평가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평가 프로세스도 개선한다.

거래소 측은 "기술평가모델 개정의 목적은 특례상장의 문턱을 높이거나 낮추는 게 아니라, 여러 평가기관의 공통 평가지표를 마련해 균질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표준화 작업은 완료됐고, 평가기관이 해당 모델을 시범 적용 중이다. 개선된 기술평가모델은 내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반면, 바이오 기업들은 새 기술평가모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평가 기준을 규격화하면 평가 기준에 없는 신기술을 가진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바이오 업계에선 수정된 기술평가모델이 혁신 산업을 키우겠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오히려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평가 기준이 동일해지면 임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기업만 시장에 들어오거나 혁신이 아닌 기술을 갖고 임상 단계만 맞춰 상장하려는 꼼수가 나올 수 있다"면서 "이는 혁신 산업을 육성하려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폐지 기술성장 기업 '0'…"퇴출 구조 필요"

기술평가모델 표준화 작업은 투자자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걸러내겠다는 목표다. 제대로 된 기술평가가 투자자 보호 장치인 만큼 이번 작업의 의미는 크다. 다만, 기술평가모델을 개선하는 것만으론 특례상장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어렵다는 게 바이오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특례상장 제도의 당초 과제인 산업 육성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산업의 성장도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특례상장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 산업 생태계가 망가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나치게 낮아진 상장 문턱과 △경직된 상장폐지 제도를 꼽는다. 특례상장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바이오 기업 104곳이 코스닥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상장폐지된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이미 경쟁력을 잃었지만 '상장사'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받아 연명하는 기업도 많다는 얘기다.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에 모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특례상장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폐지 제도 활성화가 거론된다. 기술평가특례나 성장성 추천 제도로 상장한 기업(기술성장 기업) 중 경쟁력이 사라진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여러 바이오 기업이 특례상장 제도로 상장했지만, 성장 가능성이 없는 기업조차 망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이라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상장폐지되고, 이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다시 시장에 들어와 경쟁할 수 있는 탄력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상장사는 안전하다? '투자자' 인식 변화도 중요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개인 투자자 인식 변화 등도 중요하다. 바이오 산업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유독 크다. 용어 자체도 어려운 데다 투자의 중요한 판단 근거인 기술이전 계약 내용도 영업기밀을 내세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육성과 규제라는 두 역할을 모두 맡고 있는 거래소가 시장에 가해질 충격 등을 이유로 기술성장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낮추는 일도 잦다.

불성실공시법인에 대한 처벌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거래소는 지난 2월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선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임상 중단 내용을 즉시 공시하지 않거나 공시에 자의적 판단을 포함하는 등 바이오 기업의 공시위반 사례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특례상장 제도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엄격한 공시제도 운영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술성장 기업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신약 개발의 최종 출시 성공률은 0.01%에 불과하다. 게다가 특례상장 제도로 시장에 입성한 기업은 대부분 재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이다. 업계에선 기술평가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기술성장 기업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왔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가 안정성보단 성장 가능성에 집중한 기술성장 기업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인지한 뒤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세대 기술성장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아직 우리나라엔 빅파마와 경쟁할 수준의 신약 개발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벤처한테 하루 빨리 신약 개발 성과를 내놓으라는 건 15살 아이를 두고 결혼을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산업의 신뢰도를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거래소와 기업, 투자자 모두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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