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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삼성·SK 골머리

  • 2023.03.02(목) 16:44

K반도체, 美·中 패권 전쟁에 새우등  
초과이익 환원, 경영기밀 공개해야

그래픽=비즈워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까다로운 보조금 지원 조건을 내걸었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내 투자를 확대하거나 신규 투자를 금하는 것은 물론 초과이익을 미국에 환원하고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땐 복지시설과 보육시설 등을 갖추도록 했다. 수익성 지표 제공 및 반도체 핵심 공정 접근 허용 등 경영 기밀을 공개해야 하는 내용까지 포함된 탓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명분은 ‘보조금’이지만 사실상 자국 이익 극대화를 노린 꼼수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조금 지급 목적은 미국 경제와 안보”

/ 그래픽=비즈워치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지급 기준을 담은 지원공고(NOFO)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110억달러 등 5년간 약 520억달러(약 51조7000억원)를 편성하는 법안이다. 제2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도 불린다.

지원금 신청 의향이 있는 기업은 이날부터 미 상무부에 의향서를 우선 제출할 수 있고, 상무부는 이들 기업과 개별 협상에 나선 뒤 본신청서를 받는다는 방침이다.

이날 상무부가 발표한 보조금 지원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해당 공고에 따르면, 반도체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현금흐름·내부 수익률·수익성 지표·예상 수익을 포함한 자세한 재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기업이 장기간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지 심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예상을 웃도는 초과수익을 낼 경우 이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지원한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환수되며,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이달 중 공개된다.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을 공개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보조금 지급 목적이 미국 경제와 안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안보 프로그램에 집약될 수 있고 실험·전환·생산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미 정부는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미국 군사 장비 반도체 공급망이 손상될 것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대만에서 고급 칩의 90% 이상을 구매하고 이는 지탱할 수 없는 안보 취약점”이라며 “드론부터 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교한 군사 장비는 반도체에 의존하기에 국방부는 이 법에 따른 자금 지원을 받는 시설에서 제조된 첨단 반도체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시설 건설에는 적정 임금을 지급하는 현지 건설 노동자를 이용하고 미국산 철강, 건축 자재도 사용하도록 했다. 건설 및 공장 근로자를 위한 사내 보육 지원 계획도 제출해야 한다.

이미 예고된 대로 심사 기준엔 중국을 겨냥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포함됐다.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상무부는 중국 관련 세부 규정을 이달 중순 다시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울며 겨자 먹는 K반도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중국 견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견했으나, 이 정도 수위의 조건을 내걸 줄은 몰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을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정 과정뿐만 아니라 장비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업계 내 대외비”라며 “반도체 공장은 그만큼 보안에 예민하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는데 이 부분을 오픈하라고 하는 것은 보조금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세부 조건을 면밀히 검토한 후 보조금 신청에 나설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선 최근 반도체 업황이 어려워 미국의 지원을 포기하기 쉽지 않고, 무엇보다 미국 정부의 눈 밖에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위원은 “미국 정부는 표면적으로 ‘신청을 받겠다’고 했지만 만일 신청을 하지 않을 땐 ‘중국에 투자를 하거나 협력하겠다’고 비춰질 수가 있다”며 “2021년 11월경 미국 상무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상대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들의 설계 기술 및 재무 상태 등을 모두 보고하라고 한 사례를 감안했을 때 설령 보조금을 받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또다시 그런 발표를 하게 되면 그러한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니 결국 우리나라 기업들은 억지로라도 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중국 투자도 관건인데, 신규 투자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까지 해오던 수준의 중국 공장 가동은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해당 부분에 대해선 우리나라 정부가 나서서 미국 정부 및 상무부와 합의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미 정부 보조금을 받을 경우 사업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미국 정부와 추가 협의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간 정부는 가드레일 조항 등 같이 우리나라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에 대해 업계와 대응방안을 논의한 후 미 상무부 등 관계당국에 우리 측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왔다”며 “추후 가드레일 세부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미 관계당국과 계속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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