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김민성 기자]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장생포. 이곳은 오래전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불릴 만큼 고래가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장생포에서 고래를 찾아보긴 힘들다. 1986년까지 이어진 무분별한 포획 탓도 있지만, 울산 앞바다 속 수많은 해양쓰레기로 고통받는 고래가 늘어난 영향이다.
고래가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울산앞바다 청소에 앞장선 곳이 있다. 바로 SK다. SK에게 울산은 고향과 같은 곳이다. 최종현 선대 회장이 유공을 인수해 정유사업에 나선 이후 사업이 크게 성장했고, 현재 SK이노베이션의 기반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SK는 친환경 경영에 앞장서겠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기조에 발맞춰 울산 지역 환경 복원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장생포에 가보니 여러 배들이 쉴 새 없이 부두를 드나들고 있었다. 이 중 눈에 띄는 몇몇 배들이 있었다. 갑판에 컨베이어벨트가 달린 배다. 얼핏 보면 해산물이 담긴 어망을 끌어올리는 용도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 용도는 바다에 떠다니는 해양쓰레기 수거 장치다. 이 배들의 정식 명칭은 '청항선'이다. 청항선은 바다에 떠다니는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특수선으로, 바다의 환경미화원으로 불린다.
청항선 내 컨베이어벨트를 작동시키니 '위이잉'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나 플라스틱 등 부유물들이 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항선은 컨베이어벨트를 켜고, 바다를 돌아다니며 청소기처럼 해양쓰레기를 거둬들인다.
이렇게 수거한 해양쓰레기들은 건조한 뒤 소각하거나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소각시 환경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재활용이 중요하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해 나선 기업이 우시산이다.
우시산은 2015년 울산에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고래를 비롯한 해양생물들이 버려진 플라스틱과 비닐 등 쓰레기로 고통받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우시산은 수거된 폐플라스틱을 의류나 우산, 컵 등 다양한 상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우시산에 따르면 지난해 수거한 폐플라스틱의 양은 40.3t이다. 500㎖ 생수병 14만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거둬들인 폐플라스틱의 양은 102톤에 달한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얻는 이산화탄소 저감효과는 239.7t으로, 30년생 편백나무를 4만625그루 심는 양과 유사하다.
친환경 경영에 앞장서는 SK
울산항만공사의 해양쓰레기 수거 사업과 우시산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뒤엔 SK이노베이션의 지원이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9년부터 울산항만공사,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유엔(UN)환경계획 한국협회, 우시산과 '해양 플라스틱 저감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바다 위 플라스틱들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사업구조 마련이 골자다.
변의현 우시산 대표는 "우시산은 아무래도 영세한 사회적 기업이다 보니 홀로 활동하기엔 한계가 많다"며 "SK이노베이션뿐 아니라 SK그룹 차원에서 금전적, 홍보·마케팅, 네트워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올해 3월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출범 1주년을 맞아 울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시산의 활동과 성과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최 회장은 "신기업가정신은 ESG는 물론이고 사회가치를 창출하면서 기업가치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확대됐다"며 "봉사활동, 기부활동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새로운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SK가 환경개선 활동에 앞장서는 이유는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가 강조한 친환경 경영활동의 일환이다. ERT는 지난해 5월 최 회장의 주도로 출범한 협의체로, '기업 선언문'을 통해 △경제적 가치 제고 △윤리적 가치 제고 △새로운 기업문화 조성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 등을 새로운 기업가 정신의 방향으로 꼽았다.
ERT가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제시한 것은 기업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과거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기업의 역할은 이윤과 일자리 창출, 세금을 통한 국민경제 기여 등에 머물렀다. 하지만 기후변화,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전환, 전 세계적인 전염병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하며,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추세다.
최 회장은 신기업가정신 협의회 출범 당시 "기후변화, 공급망 재편, 사회양극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많은 사회적 문제를 정부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기업이 나서야 한다"며 "기업은 사회요구에 부응해 변화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