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매입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에 대한 심문이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0부(김상훈 부장판사)에서 열렸다. 이날 양측은 △자사주 매입 적법성 △고려아연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 △주주 평등 원칙 준수 여부 등을 두고 치열하게 맞섰다.
"손해 1조3600억" vs. "재무 건전성 양호"
영풍은 최 회장의 자사주 매입이 고려아연에 심각한 재정적 손해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풍 측 변호인은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89만원, 총 매수 대금을 3조원으로 했다"며 "공개매수에 의해 회사가 입게 될 손해 규모가 이제 확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0년간 30만~55만원에서 변동됐고 2022년 8월 경영권 분쟁으로 67만2000원에 도달, 분쟁이 종료되자 다시 55만원 아래로 내려왔다"며 "자사주 공개매수가 중단되지 않을 경우 고려아연이 즉각적으로 입을 손해만 1조20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영풍 측은 자사주 매입이 회사의 재무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자금 조달 문제도 지적했다. 영풍 측 변호인은 "고려아연은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차입하려 하고 있으며, 1년 (총 이자는) 1600억원"이라며 "회사의 손해는 1조3600억원이 넘는다"고 경고했다. 고려아연은 단기 회사채 1조원, 금융 기관 한도 대출 1조7000억원 등으로 자사주 공개매수 재원을 마련한다. 이는 자기자본의 28%에 달한다.
최윤범 측 변호인은 자사주 매입이 장기적 재무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부채 비율 36%, 차입금 의존도 10%에 불과하다"며 "공개매수 이후부채 비율은 별도 기준 약 82.7% 수준이고 1조5000억원 이상의 총 현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의 주장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견조한 영업 실적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차입금을 전부 상환할 계획이다.
'자사주 재원' 배당가능이익 규모는?
자사주 공개매수의 재원인 배당가능이익에 임의적립금을 포함시킬지 여부도 쟁점이다. 영풍 측은 배당가능이익에서 임의적립금을 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측이 이사회 결정을 통해 임의적립금을 자사주 공개매수에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위법하다는 논리다.
고려아연은 상장법인의 자사주 취득가 총액이 상법에 따른 이익 배당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상법에서 이익 배당의 한도에서 이익준비금을 공제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영풍 측 변호인은 "상법이 배당 이익의 한도에 관해 임의 준비금의 공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공제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상법은 개별 회사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공제 의무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한 것이고, 주식회사는 정관과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공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에버랜드 판례 꺼낸 영풍, 효성 판례 꺼낸 고려아연
영풍 측은 자사주 매입이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2007도4949)를 인용, 적정 가격보다 비싸게 산 만큼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으로 보고 이에 관여한 임원들을 배임죄로 처벌했다.
영풍이 인용한 이 판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저가 발행하는 행위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은 인정해 임원들에 대한 배임죄를 인정했다.
반면 최윤범 측 변호인은 "효성 사건에선 자사주 고가 매수가 배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었는데, 서울고등법원은 모든 주주에게 균등한 기회가 부여됐다는 점에 주목해 회사의 손해와 이사의 임무 위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며 반박했다.
이어 "법무부도 자사주 취득은 본질적으로 회사의 재산을 주주에게 변환하는 것으로, 모든 주주에게 지분 비율에 의해 분배되는 자사주 취득은 주주 사이의 부의 이전에 불공정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MBK 막대한 배당 요구" vs. "MBK, 손해 안 끼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맺은 콜옵션도 쟁점이었다. MBK는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해 고려아연 지분 50%+1주를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날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장악한 뒤 MBK가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MBK 투자금(2조8000억원)에 대한 조달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막대한 배당을 요구하는 등 고려아연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콜옵션은 MBK가 제3자에게 주식을 처분할 때만 행사할 수 있다"며 "그때까지는 9000억원의 투자금만 소요되고, MBK의 경영 참여가 고려아연에 재정적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자사주 공개매수에 영풍 제외" vs. "MBK 계약 탓에 제한"
주주 평등 원칙 위반 여부도 치열한 쟁점 중 하나였다. 영풍 측은 최 회장의 자사주 매입이 주주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영풍 측 변호인은 "33.1% 주식을 가진 최대 주주(영풍)를 계획적으로 배제시키고, 2대 주주인 최 회장의 이익만을 도모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최 회장 측은 기회를 동등하게 주었으므로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며 "영풍은 MBK와 경영 협력 계약을 체결해 보유 주식 처분이 제한됐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