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에 몸 담은 지 25년이 넘었지만, 작년처럼 증권업계 전체가 불황의 깊은 늪에서 고통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 증권사 사장의 갑오년 신년사다. 현재 증권업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식거래대금이 줄면서 증권사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문제는 증권업계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저수익 늪에 빠졌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날씨로 빗댄 올해 증권업계 신용도를 ‘비’로 전망했다. 작년 ‘흐림’보다 더 악화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증권산업의 단기적 산업위험 전망을 ‘부정적’으로, 한국기업평가는 올해 증권사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 증권업 체크리스트
①거래대금 : 지난해 코스피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4조원이다. 2012년 4조8000억보다 16.7% 감소했다. 2011년 9조원에 달하던 거래대금은 2년 새 반 토막 났다. 이에 따라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인 증권사의 수익도 급감했다. 지난해상반월(4~9월) 국내 증권사(62개)의 순이익은 2516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4229억원(62.6%) 줄었다.
더 큰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가 상승하고 있지만, 오히려 거래대금은 줄었다는 점이다. 손 바뀜(회전율)이 잦은 개인투자자가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신평은 “개인 거래 감소로 인한 위탁매매부문 실적 저하와 경쟁심화에 따른 위탁매매 수수료율 하락은 단기적인 요인이 아닌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기평은 “고령화와 가계부채 확대 등으로 주식거래대금의 급격한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②구조조정 : 증권업계가 저수익 구조에 내몰리면서 개별 증권사는 몸집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수수료 수익이 줄면서 지점 운용의 비용 부담이 커져서다. 국내 지점수는 2009년 3월 1759개에서 지난해 6월 1549개로 줄었다. 희망퇴직 등 고강도 인력감축도 병행하고 있다. 신평사들은 올해도 증권업계 구조조정이 계속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과도한 구조조정이 증권사의 수익창출 능력을 저하시키고, 업무상 운영위험을 키울 수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는 이미 인수합병(M&A)을 통한 재편에 들어갔다. NH농협금융으로 우선협상자를 선정한 우리투자증권과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는 동양증권, 현대그룹이 매각을 공식 선언한 현대증권 등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다. 자기자본이 4조원에 이르는 KDB대우증권도 잠재적 매물 대상이다.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증권업계 판이 바뀌게 된다. 반면 매물로 나온 이트레이드증권, 리딩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는 당분간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 주요기업 크레딧포인트
①현대증권 : 현대그룹은 작년 말 현대증권 매각을 핵심으로 하는 고강도 자구안을 내놨다. 현대자산운용과 저축은행을 포함한 예상 매각액은 7000억~1조원이다. 현대증권은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5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투자은행) 중 하나다. 영업용순자본비율은 500% 내외다.
하지만 신평사는 매각대금과 시기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적자가 지속되고 순자산이 장부가보다 작은 현대저축은행, 현대증권 우선주 관련 파생계약 손실 보전 문제 등이 걸림돌이다. 또 현대상선이 계상하고 있는 현대증권 주식 장부가(6293억원)는 시장 가격인 3000억원보다 높게 형성돼 있는 실정이다.
②동양증권 : 동양증권은 지난해 ‘동양사태’ 이후 계열위험이 전이됐다. 작년 6월 14조원에 이르던 동양증권 자산은 동양사태 직후인 10월 말 6조4000억원대로 반 토막 났다. 단기적으로 상환해야 할 부채는 7조원으로 추정되지만, 유동성위기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는 연간 988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작년 9월 1조1166억원의 자기자본은 올해 3월 9913억원, 내년 3월 8925억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신평은 “영업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고, 충분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하면 적자 구조가 고착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양그룹 부실 기업어음(CP)·회사채 판매에 대한 보상규모가 최소 1339억원에서 최대 6310억원까지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동양증권은 매각주관사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을 선정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중이다.
③우리투자증권 : 국내 신평사들은 우리투자증권이 농협금융지주에 편입되더라도 업계 상위권의 지위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농협금융이 보유한 영업기반을 활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분야가 취약했던 농협금융으로선 우리투자증권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농협금융의 재무적 지원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해외 신평사들은 우리투자증권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업 경험이 부족한 농협금융이 우리투자증권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봤다. 무디스는 특히 우리투자증권이 농협금융으로 넘어가면 대주주의 지원 가능성이 우리금융 때보다 약화될 수 있다며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무디스는 우리금융의 지원 가능성을 고려해 우리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을 2단계 높게 평가해왔다.
◇ 기업별 신용등급 변화 (2013년)
대우증권 AA+ → AA+
우리투자증권 AA+ → AA+
삼성증권 AA+ → AA+
현대증권 AA → AA
미래에셋증권 AA- → AA
노무라금융투자 AA- → AA-
NH농협증권 A+ → AA-
KB투자증권 A+ → A+
동부증권 A → A+
메리츠종합금융증권 A+ → A+
유진투자증권 A → A
이트레이드 A → A
아이엠투자증권 A- → A
동양증권 A → BBB-
리딩투자증권 BBB → B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