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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황제배당'의 심리

  • 2014.04.16(수) 11:06

소액주주 찔끔, 오너 팍팍..배당 양극화
“오너들, 배당하면 자기돈 나간다고 여겨”
“입지 취약한 대주주, 배당 욕구 커” 분석도

올해도 어김없이 일부 대기업 오너들은 거액의 배당금을 받았습니다. 배당은 사업 밑천(지분)에 대해 받는 정당한 대가입니다. 하지만 도를 넘는 배당액 탓에 '배당 잔치, 황제 배당' 등의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회사 실적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배당금을 챙긴 오너들이 타깃입니다.

 


◇ 100배 배당

부영그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장남 이성훈 전무는 그룹 계열사인 광영토건에서 지난해 총 100억원을 배당으로 받았습니다. 광영토건의 지난해 순이익은 7억6728만3781원. 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인 배당성향은 1303.3%에 이릅니다. 순이익의 13배를 배당했다는 얘기죠.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유가증권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13.1%입니다. 광영토건은 상장사들보다 100배 더 배당한 것이죠.

적자 기업에서 배당을 챙긴 오너도 있습니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는 지난해 92억원의 순손실을 낸 가운데, 20억원을 배당했습니다. 배당액은 크지 않았지만, 배당을 할 만큼 재무 상황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배당 가운데 13억6000만원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오너 몫입니다. 지난해 366억원의 적자를 낸 팔도도 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의 아들인 윤호중 전무에게 31억원을 배당했습니다.

 

심지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장남인 장재영씨가 대주주로 있는 유니엘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매출이 '0'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총 84억원을 배당했습니다.

 

◇ “불법 아니지만, 도덕적인 문제”

회사 실적을 고려하지 않는 배당이 불법은 아닙니다. 상법에서 정한 배당 한도만 넘지 않으면 됩니다. 배당 한도는 순자산에서 자본금, 자본준비금 등을 빼면 구할 수 있습니다. 순자산만 넉넉하다면, 당해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충분히 배당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배당 한도 = 순자산 - 자본금 - 자본준비금 - 이익준비금 - 미실현이익


익명을 요구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배당의 기준은 순이익이 아니다.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당할 수 있다. 손실이 났더라도 기존에 쌓아둔 돈이 있다면 배당할 수 있다. 상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도덕적 지탄을 받을 뿐이다. 성장 동력을 갉아먹으면서 배당하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타당한지, 판단해 볼 문제다.”

◇ 상장사 배당은 오히려 인색

재밌는 점은 배당잔치는 주로 오너가 있는 비상장사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은 오히려 배당에 인색합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배당을 실시한 286개 유가증권 상장사의 배당금은 총 9조1652억원 수준입니다. 얼핏 보면 많아 보이지만, 시가배당률(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비율)로 보면 아주 미비한 수준입니다. 지난해 시가배당률은 고작 1.82%. 2012년 보다도 0.26%p 줄었습니다. 

상장사의 배당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말 20.7%였던 유가증권시장의 배당성향은 지난해 13.1%로 낮아졌습니다. 해외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해 미국(38%), 영국(48%), 캐나다(58%) 등 선진국 평균 배당성향은 49%이고,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의 배당성향도 41%에 이릅니다.

자본시장연구원 강소현 연구원의 말입니다. “해외에 비해 배당률이 낮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터무니없게 낮은 수준은 아니다. 총 배당규모는 작지만, 배당하는 기업 수가 훨씬 많다. 평균적인 배당이 낮단 얘기다. 1997년 IMF를 겪고 트라우마도 생겼다. 여유자금이 생기면, 빚부터 갚는다. 또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배당도 줄었다.”

강 연구원은 다만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기업의 적절치 않은 배당은 지배구조 차원에서 문제를 추적해야 한야”고 지적했습니다.

◇ 소액주주 찔끔..오너 팍팍

오리온의 사례를 볼까요.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두 회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 곳은 초코파이를 만드는 오리온이고, 다른 한 곳은 아이팩이라는 회사입니다. 아이팩은 오리온에 포장지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담 회장이 지분 53.33% 보유한 최대주주로, 비상장사입니다. 

 

두 회사의 덩치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 오리온의 작년 연결기준 매출은 2조4852억원, 영업이익은 2588억원입니다. 반면 아이팩의 매출은 403억원, 영업이익은 7억원에 불과합니다. 그럼 배당은 어떨까요?

오리온은 지난해 159억원을 배당했습니다. 주당 3000원씩 배당했는데, 담철곤 회장 등 오너 일가는 50억원 가량을, 지분 42.02%를 가진 소액주주들은 75억원을 각각 배당받았습니다. 그런데 담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아이팩이라는 비상장사는 지난해 150억원을 배당했습니다. 배당금 150억원은 고스란히 담 회장이 챙겼습니다. 배당률(액면가 대비 배당금)은 1640%에 이릅니다.

온전히 자신에게 배당이 돌아오는 개인 회사의 배당은 `팍팍`, 수 천 명의 주주가 나눠먹는 상장사의 배당은 `찔끔`한 것이죠.

특히 아이팩은 오리온에 과자 포장지를 공급하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있습니다. 또 이 회사는 지배구조도 투명하지 못합니다. 아이팩은 원래 담 회장의 비자금이 만들어지던 ‘비밀 금고’였습니다. 2011년 검찰의 수사 직후 최대주주가 담 회장으로 바뀌었지만, 깔끔히 지배구조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2대주주인 프라임 링크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Prime Link International Investment Limited)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소액 주주에게 인색하고, 오너에게 후한 배당 문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지배구조 문제다. 오너들은 주식회사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배당하면, 괜히 자기 돈이 (소액 주주들에게) 빠져나간다고 여긴다.” 

 

◇ 불안하니까 챙긴다?

 

지배구조나 오너로서의 입지에 취약점이 클수록 고액배당 욕구가 강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사이외사로 일해본 한 대학교수는 "오너들이 배당을 챙겨가는 행태는 그 사람이 오너일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회사를 실질적으로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오너가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지분을 가진 경우 터무니없는 배당금을 챙겨가는 사례는 많지 않더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인데요. "자기 회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굳이 회사 이익을 내 호주머니로 빼돌려서 비난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분율이 낮은 오너 2세라든지, 사위 등 직계가 아닌 경우 고액배당으로 회사 이익을 빼내 사유화하려는 욕심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어차피 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주와 종업원 등 이익을 공유할 대상을 배려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높은 배당금을 챙겨간다는 것이죠.

 

이들은 본인 소유의 비상장 계열사를 세운뒤 돈되는 일감을 몰아서 받는 수법으로 회사 이익을 자신에게 비상장사로 흘러들게 하고, 배당이라는 합법적인 형태로 이익을 빼내갑니다. 빼내간 돈은 지분을 늘려서 회사내 입지를 탄탄하게 하거나 승계자금으로 쓰이기도 하죠.

 

위에서 예로 든 담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과 결혼하면서 회장까지 올랐지만, 담 회장의 오리온 지분(12.91%)은 이 부회장 지분(14.49%)에 아직 못 미칩니다. 고액 배당을 받은 윤호중 한국야쿠르트 전무와 이성훈 부영그룹 전무도 아직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 받지 못한 2세들입니다.

 

어쩌면 이들이 받은 거액 배당금에는 지배구조에 대한 불안감, 오너 일가내에서 본인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투영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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