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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유재훈이 꿈꾸는 예탁결제원

  • 2015.02.05(목) 18:01

'방만경영' 딱지 떼고 올해는 '선택과 집중'
"예탁결제업, 새로운 생태계 조성 역할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관리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 곳의 자산을 팔면 삼성전자(시가총액 약 200조원)를 통째로 15개 살 수 있다. 정부보다 더 많은 자산을 관리하지만 국민들에겐 잘 알려져있지 않은 곳, 한국예탁결제원이다. 지난해말 현재 예탁결제원이 보관하고 있는 자산총액은 3000조원이 넘는다. 숫자 '3' 뒤에 '0'이 15개 붙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하루 평균 거쳐가는 금액은 약 70조원. 이 곳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나라 주식과 채권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다.

물론 거래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장롱 속에 고이 보관한 주식을 꺼내 그 곳이 서울이든 부산이든 달려가 직접 건네고 돈을 받으면 된다. 중간에 잃어버리거나 사기를 당하는 일은 예탁결제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대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예탁결제시스템 정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

 

 

◇ 방만경영 꼬리표 떼기 1년

하지만 한국에선 언제부터인가 '예탁결제원=방만경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예탁결제원은 고액연봉과 과도한 복지로 인해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고, 유재훈(54·사진) 사장은 지난 1년간 인원감축, 복리후생비 삭감, 부서통폐합 등 조직내 악역을 떠맡았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방만경영이라는 낙인 앞에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곤 했다.

허리띠를 졸라맨 끝에 최근 예탁결제원은 정부의 방만경영 관리대상에서 뒤로 빠질 수 있었다. 증권거래소처럼 공공기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준정부기관'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유형이 변경됐다. 군대로 비유하면 B급 관심사병에서 C급 관심사병으로 바뀐 셈이다.

유 사장은 5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간 내부정비에 주력했다면 올해는 그간 역점을 두고 진행한 사업이 결실을 맺도록 조직역량을 배치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겠다"고 했다. 예탁결제원은 전자증권제도 도입, 글로벌 법인식별기호 발급, 위안화채권 동시결제시스템에 힘을 쏟기로 했다. 외부에선 알듯 모를 듯한 사업이지만 예탁결제원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게 유 사장의 설명이다.

 

 

◇ "지금은 선택과 집중해야"

유 사장이 증권거래소의 상장(IPO)에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거래소의 상장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거시구조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거래소의 주주인 증권회사들의 주도하에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의 승인을 얻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소 상장이 시급히 추진할 현안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증권거래소는 예탁결제원의 지분 약 70%를 보유한 대주주로 이번에 공공기관 지정해제와 함께 상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상장한다면 자회사인 예탁결제원의 소유와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증권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은 모자(母子) 관계로 엮여있지만 경영과 인사 등은 완전히 별개로 이뤄지고 있다. 증권거래소 상장이라는 이슈가 불거지면 유 사장으로선 머리 싸맬 일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계획도 틀어진다.

그는 글로벌 예탁결제회사인 DTCC(The 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oration), 유로클리어, 클리어스트림을 머릿속에 두고 있다. 이들 회사와 비교해 예탁결제원이 어디쯤에 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구상한다고 했다. 지금의 예탁결제원은 사업다각화나 글로벌화가 미흡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유 사장은 "아시아에 투자하거나 판매하는 펀드 대부분이 유럽의 룩셈부르크에 등록하고, 중개시스템을 운용하는 인력도 비(非)아시아인이 많다"며 "아시아의 저축과 자산을 왜 아시아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새로운 생태계 '후원군'

예탁결제업무를 활용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예컨대 예탁결제원이 운영하는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자자문서비스 앱(App)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시의 버스정보를 이용해 수많은 앱이 등장했듯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사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총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이 활성화되면 주총안건을 분석하고 자문하는 새로운 산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탁결제원은 지난해 11월 본사 이전을 계기로 '부산 시대'를 열었다. 부산에 증권박물관을 세우는 등 외형적 기여도 계획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산 이전효과는 더욱 크다는 게 유 사장의 설명이다. 가령 주식투자자가 배당을 받으면 지방소득세를 내야한다. 내국인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세금이 귀속되지만, 외국인은 예탁결제원이 있는 부산에 귀속된다. 이렇게 부산시에 돌아가는 지방세 수입이 연간 1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 사장은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도약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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