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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④-1 방황하는 사회책임투자

  • 2017.06.19(월) 09:36

사회적책임 길을 묻다…주목받는 사회적 책임투자
뒤늦게 태동 후 아직 성과 없이 기나긴 표류
해외 흐름과 새정부 정책 맞물려 활성화 기대

# 2015년 9월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이 미국 내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으로 대규모 리콜 명령과 함께 판매중단 조치를 받는다. 이른바 '디젤게이트'다. 이 소식에 폭스바겐 주가는 열흘 새 40% 가까이 빠지며 반 토막 났다. 폭스바겐의 4대 주주로 알려진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폭스바겐 주가 폭락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 손실을 봤다. 이후 주가가 일부 회복하긴 했지만 같은 해 10월 폭스바겐은 사회책임투자지수인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명단에서 제외됐다. 지난 1999년부터 2004년,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이름을 올린 폭스바겐으로서는 대굴욕이다.

 

# 2010년 4월 미국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환경 참사가 벌어진다. 멕시코만 마콘도 유정에 설치된 원유시추 시설인 '디프 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하면서다. 근로자 11명이 숨지고 1억7000만 갤런의 원유가 바다에 유출되면서 심각한 해양 환경오염을 일으켰다. 주범은 굴지의 글로벌 석유업체인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었다. BP는 단일 기업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4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6위였던 BP는 주가 폭락으로 시가총액 100조원이 날아갔다. 특히 과도한 경비 절감 정책을 쓰면서 원유 유출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기업의 이야기는 사회책임투자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잘나가는 큰 기업이라도 환경과 사회를 외면하면 결국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돈 잘 버는 기업에 투자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가 필요한 자명한 이유다.

 

하지만 국내 사회책임투자는 거의 20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제대로 빛을 못 봤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과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내 사회책임투자가 방황한 길을 되돌아보면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다.

 

 

◇ 선진국, 연기금 중심 투자 활발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ility Investment)는 기업의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해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 SRI로도 불린다. 197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시작된 사회책임투자는 처음엔 무기와 담배, 도박 등 이른바 죄악주로 분류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투자 윤리를 중시하는 대형 연기금들이 주로 앞장섰다.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히 기업의 윤리적인 역할뿐 아니라 환경보호나 사회공헌에 힘쓰는 기업의 경우 이미 생존의 단계를 넘어선 경우가 많고 그만큼 지속 가능한 기업임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경영 철학 변화를 통해 단기보다는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추구한다. 이런 기업들을 찾기 위해 해외 연기금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를 따져보고 위험요소를 파악해 투자하고 있다. 특히 미국보다 유럽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먼저 발전하면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그 선봉에 서 있다. 미국 최대 규모 연기금인 캘퍼스도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대표적인 연기금이다.

 

◇ 국내는 국민연금조차 '찔끔' 투자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사회책임투자는 역사부터 길지 않다. 2000년대 중반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펀드를 집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SRI 지수도 2009년 9월부터 산출돼 채 열 돌도 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2009년 UN PRI(하단 용어설명 참고)에 가입한 후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고 다른 연기금도 참여 중이다. 그러나 이들 연기금을 제외할 경우 사회책임투자 시도는 미미하다. 지난 2015년 말 현재 전체 시장에서 공적 연기금의 비중이 90%에 육박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국민연금의 비중이 97%로 압도적이다.

 

심지어 국민연금(1.33%)과 사학연금(0.78%), 공무원연금(2.07%) 등 3개 공적 연기금 내부적으로도 전체 기금 운용 대비 SRI 비중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까지도 이 비중에는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하락하면서 한국 SRI시장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때 20%에 달했던 SRI 공모펀드 비중도 갈수록 줄어들며 연기금에 대한 의존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5년 말 국내 전체 공모펀드 규모 대비 SRI 공모펀드 규모 비중은 0.3%로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 SRI 지수·상품 잇딴 실패

 

그간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번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한국거래소는 2009년 9월부터 사회책임투자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책임투자지수(SRI 지수)를 발표했지만 활용도가 저조하자 지난해 9월 산출을 중단했다.  

 

2015년 12월 신 SRI 지수 3종(KRX 리더스 ESG 150, KRX 거버넌스 리더스 100, 에코 리더스 100)을 새롭게 개발했지만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도 전혀 없는 상태다.

 

SRI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도 시장의 외면과 함께 설정액과 수익률 부진으로 지난해 자진 상장 폐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국내에서 SRI 지수를 추종하는 유일한 국내 ETF였던 파이오니어 SRI ETF는 상장된 지 6년 만에 상장 폐지됐다.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으로 줄어든 데다 수익률마저도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부진했던 탓이다.

 

신 사회책임투자 지수가 출범한 2015년 12월 21일을 기준으로 지난해 말까지 코스피200지수는 6.7% 상승했지만 KRX ESG 리더스 150지수(1353.17→1342.45)는 보합권에 그쳤고, KRX 거버넌스 리더스 100은 오히려 5.1% 하락했다. 그나마 에코 리더스 100은 3.9%의 수익률로 체면치레했다.

 

SRI 지수가 연달아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편입 종목 상당수가 시가총액 상위종목으로 구성되면서 코스피200 지수 등과 전혀 차별화되지 못하기 때문으로 지목된다. 투자상품 또한 단순한 형태로 개발되면서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사회책임투자 전문가 그룹인 서스틴베스트 백지영 연구원은 "국내에서 운용되는 대다수 책임투자 펀드는 ESG 분석을 종목 스크리닝 도구로만 활용하고 주주권 행사에도 소극적"이라며 "제대로 된 책임투자를 했을 때 시장수익률을 웃돌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은 데다 기존 주식형펀드와 차별화도 없다"고 평가했다.

 

◇ 여전히 빈손으로 다시 주목

 

사회책임투자 지수와 관련 투자가 새롭게 주목받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인식 제고와 함께 뚜렷한 성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와 달리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사회책임투자 지수는 주식시장을 웃도는 성과를 보인다. SRI 지수 성과가 좋다 보니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일종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사회책임투자 펀드의 대표적 지수인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만 해도 장기적 성과가 상당히 우수하게 나타난다.

 

기관투자자의 사회책임투자 펀드의 운용 규모가 커지면 이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역시 사회책임투자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단순히 공공성을 따지는 것이 아닌 수익성이 뒷받침되는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SRI가 대형주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성과가 부진했지만 사회책임투자의 틀을 제대로 갖출 경우 국내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서스틴베스트가 ESG 성과를 가치 사슬과 연계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상위 603개 기업을 평가한 결과 AA등급과 A등급으로 구성된 기업 포트폴리오가 코스피 성과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책임투자의 개념에 맞는 종목을 선정해 운용한다면 국내에서 사회책임투자가 유효할 수 있다는 결과다.

 

게다가 새 정부의 주요 공약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권 행사 활성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등 책임투자와 맥을 함께하는 정책이 많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백지영 연구원은 "책임투자는 이미 글로벌 트렌드로 해외 공적 연기금은 물론 대형 운용사들 사이에서도 ESG와 펀더멘털 분석의 통합,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주주권 행사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과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맞물리면서 국내에서도 책임투자가 더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용어설명 : UN 책임투자원칙(UN PRI, UN Principles for Resonsible Investment)

 

UN PRI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UNEP/FI(un Environment Programme Finance Initiative)과 인권, 노동, 반부패에 대한 원칙 준수를 위한 UN Global Compact 및 금융기관의 협력을 통해 개발된 책임투자에 대한 국제적인 원칙이다. PRI는 투자 활동 전반을 포괄하는 국제 규범으로 기관투자자들을 고려해 개발됐다.

 

2006년 코피 아난 당시 UN 사무총장과 전 세계 30여 개 금융기관이 PRI에 서명하면서 출범했다. PRI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ESG 등 투자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


UN PRI는 6개 원칙, 33개 세부 실천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으며 투자의사 결정시 ESG 이슈 반영, 투자 대상기업의 ESG 이슈 정보공개 요구, PRI의 충실한 이행으로 구성된다. 

 

서명 기관으로는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과 같은 유럽, 미국 최대 규모의 연금펀드를 포함해 뉴욕 공무원연금(NYCERS), 뉴욕교원연금(NYSLRS), 영국대학교원연금(USS), 미쯔비시 UFJ 신탁은행, 노르웨이 정부연금 등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태국 정부연금, 기업연금인 BT Pension Scheme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을 포함, 1800개 이상의 투자자들이 UN PRI에 가입되어 있고 국민연금은 지난 2009년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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