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다시 주식시장의 변수로 등장했다.
환율보고서 이슈는 매년 찾아오는 봄가을 손님이다. 지난 4월에는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지시하며 날을 세웠고, 결국 양국이 FTA 개정 합의에 이르면서 평소보다 긴장감이 높아졌다.
환율조작국 요건을 보면 여전히 지정 가능성은 작지만 월말을 전후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점쳐진다.
◇ 한미 FTA 개정 이슈로 더 촉각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환율보고서는 환율 조작이 의심되는 주요 교역국을 환율조작국 또는 심층 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이때마다 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후보국으로 이름을 올렸고 증시도 매번 마음을 졸여왔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경상흑자 GDP 대비 3% 이상 ▲외환 순매입 규모 GDP 대비 2%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당시 환율조작국 지정을 경고한 후 첫 보고서가 나온 지난 4월엔 중국이 환율조작국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도 이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강화와 함께 한미 FTA 폐기 카드를 들고나오면서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 불공정 무역의 대표 사례로 자동차와 철강 부문을 여러 차례 거론해온 만큼 이를 관철하기 위해 환율조작 문제를 개정문에 명문화하자고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에서도 환율조작 조항이 부속서에 들어가 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도 환율 이슈가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원화 강세 보이면 증시에 부담
주식시장도 이번 달 미국의 행보를 특히 예의주시할 전망이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 이어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커지면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대개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가 이슈가 되면 원화가 강세를 보인다. 올해 3~4월에도 달러-원 환율은 예외 없이 하락했다.
이 경우 환율 변동성 확대와 함께 수출주를 압박하면서 주식시장의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국내 수출이 두 자릿수 호조를 보이고, 올해 증시 상승을 주도해 온 정보기술(IT)주가 대표 수출주란 점에서 파장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1988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때보다 충격이 훨씬 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당시보다 환율 변동 폭이 훨씬 커진 데다 지정 기준이 명확한 만큼 해지 가능성도 작아 실물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IBK투자증권은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중국 수출에도 타격을 줄 수 있어 한국 경제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에도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다면 일시적으로 높아진 불확실성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대신증권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 전후로 일시적인 원화 강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4분기 전체적으론 원화 약세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연방준비제도(Fed)의 보유자산 축소 등도 원화 강세를 제한할 수 있는 요인이다. Fed의 보유자산 축소와 함께 12월 금리인상이 기정사실로 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환율조작국 지정 여파는 단기에 그칠 수밖에 없고, 미국의 경기와 물가, Fed의 정책 대응 전반을 아울러서 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키움증권은 "최근 달러-원 환율이 1120~1140원대에서 하향 안정된 데다 4월에도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 만큼 큰 악영향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