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4일.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일본의 아사히신문사 기자 출신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했다. 이제 일을 하겠다고 집을 나선 워킹맘이 퇴사를 주제로 한 책이라니….
이나가키 에미코는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어쩌면 가족도, 아이도 없어서 홀가분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도 퇴사 준비를 10년이나 했다고 한다.
근로노동자, 특히 워킹맘들은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나간다. 하지만 대부분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고 하지 않나. 울컥하는 마음에 사표를 꺼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참아낸다. 좀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테다.
이나가키 에미코와 같이 무소유의 삶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면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혹자는 회사에 다니면서 퇴사를 준비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100세 시대다. 정년까지 채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혹시라도 정년까지 채우더라도 우리는 그동안 일한 시간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 셈이다. 언젠가는 퇴사해서 또 다른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
인생 이모작이란 말이 있지 않나. 요즘은 인생 삼모작이라고까지 한다. 삼모작을 위해 땅을 일구는데 더 오랜시간을 소요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나 스스로, 그리고 우리 가족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퇴사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자.
팔 할은 마음가짐
회사에서 나오면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하자마자 살 집을 구하는 일부터 휴대폰, 신용카드 개설에 모두 어려움을 겪는다. 회사원이라는 것만으로도 존재했던 신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현재의 생활을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출이자, 보험료, 카드값, 통신비 등으로 월급은 통장을 스쳐 갈 뿐 아니었던가. 당장 월급이 끊긴다면 이 모든 것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없어도 풍요롭다'고 가치관을 바꾸며 살아간다.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을 익혀 나가면서다.
하지만 나는 그와 생각이 다르다. 없어도 풍요롭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퇴사를 해도 풍요로울 수 있다'고 마음가짐을 바꾸는 편을 택했다.
회사가 나에게 월급과 함께 멋진 명함과 신용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그것만이 결코 풍요로움을 만들어주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주변의 워킹맘 얘기를 들어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월급, 경력단절 때문이다. 지금 당장 그만뒀다 다시 월급이 필요해지더라도 단절된 경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그들에게 존재한다.
한국 직장인들의 평균 통근시간은 58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고 한다. 나 역시 출근에만 1시간 20분을 소요한다. 하루에 3시간을 길에서 낭비하고, 지친 몸으로 종일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마치 회사만이 나의 삶을 책임져주는 것처럼 회사에 인생을 쏟는다.
하지만 회사가 나의 10년 뒤, 20년 뒤의 삶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다. 퇴사하면 인생이 끝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퇴사는 우리 삶에서 어차피 한번쯤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언제든 기쁘게 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
"뭐라도 먹고 살겠지…" 내 주변 직장인들의 마음가짐이다. 대학도 나오고 직장생활도 했는데, 혹은 내가 지금까지 회사 다니면서 쌓은 인맥과 능력이 있는데 뭐라도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얼마 전까지 나 또한 그랬다.
"내 성격이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성격과 그동안의 경험은 먹고 사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막연함은 금물이다.
내가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은퇴 후를 완벽히 준비할 수 있을지를 명확하게 목표를 세워야 한다. 상황에 따라 은퇴 시점이 빨라질 수도, 늦춰질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예상 시점 설정은 필요하다.
은퇴는 아직 나에게 먼 얘기라도 치부하다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설정 시점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은퇴 후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쌓든, 은퇴 후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하든 준비 방법은 개인의 선택이다.
은퇴 준비를 착실하게 해나가고 있는 워킹맘을 살펴보면 크게 세분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착실한 재테크다. 워킹맘 재테크 1편에서 언급한 적 있듯 내가 워킹맘 대신 전업맘을 선택했다면 내 월급은 어차피 없는 돈이다. 이 돈을 통째로 주식, 펀드, 상품, 부동산 등으로 분산투자해 자산 규모를 키워 은퇴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혹은 수익형 부동산 투자로 퇴사 후에도 안정적인 수익이 나올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두번째는 재취업을 위한 자격증 취득이다. 스스로 사업이나 창업을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다른 준비를 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무난하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현재의 경력을 살릴 수 있거나, 혹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 확보가 가능한 프리랜서 직업 관련 자격증을 주로 취득한다.
세번째는 창업이다. 거창하게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더라도 내가 잘할 수 있고, 시장성 있는 분야의 창업을 준비할 수 있다. 창업 분야에 따라 기술을 배워야 하고, 시장성 분석, 상가 입지 분석 등 준비를 철저히 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은퇴 후 퇴직금으로 무턱대고 프랜차이즈 창업을 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나. 창업을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지금부터 은퇴는 언젠가 나에게 다가올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퇴사 시점을 설정하고 은퇴 준비를 시작하자. 그래야만 웃으면서 쿨하게 사표 내는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