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만큼 맨파워(Man Power)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 없다.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와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같은 전문 서비스는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업의 핵심 경쟁력이 사람이다 보니 인적 네트워크가 자본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에는 기관투자자나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투자가 확대되면서 끈끈한 인맥이 '초대형 딜'의 성사 여부를 가르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임원진 프로필을 통해 얼기설기 엮인 증권가 파워인맥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요 증권사 수장이나 요직 임원의 '고향'을 찾아보면 옛 대우증권 출신이 수두룩하다. 대우증권은 엄격하고 혹독한 직원 교육을 통해 수많은 증권맨을 배출해 한때 여의도에서 대우맨은 '맨(Man) 중에 맨'으로 꼽혔다.
대우증권은 지난 2016년 미래에셋증권에 인수된 이후 통합법인 미래에셋대우로 출범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증권가에선 대우맨이 여전히 곳곳에 포진해 있다.
대우증권 출신으로 현재 다른 증권사에서 CEO로 활동하는 인물이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와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다.
정 대표는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주로 투자은행(IB) 영역에서 활동했다. 2005년에 옛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B 사업부를 맡은 첫해 채권인수와 프로젝트파이낸싱 주선 부문에서 우리투자증권을 업계 1위로 올려놓았다.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의 합병 이후 IB사업부 대표를 지내다 지난해 3월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정 대표가 경영 키를 잡은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연결 기준 3600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다. 올 1분기에도 IB 부문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면서 1700억원 규모의 분기 기준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 교보증권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도 대우증권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김 대표는 1983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주로 IB 부문에서 근무했다.
자산관리영업본부장과 법인영업을 두루 거쳤으며 지난 2005년에 교보증권에 IB 본부장으로 영입됐다. 2008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지난해 3월 5번째 연임에 성공, 올해까지 무려 11년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교보증권도 지난해 모처럼 호실적을 달성했는데 연결 순이익이 773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2015년 순이익(789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빼어난 실적에 힘입어 지난해 총 122억원 규모의 역대급 현금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
대우맨 가운데 증권사 주요 임원으로 활동하는 인물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김성태 DB금융투자 사장, 손승균 부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유 부회장은 1988년 당시 증권업계 1위였던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1990년대 대우증권 런던법인 재직 시절 당시 영국계 기관투자자의 대규모 한국 주식매매 중개를 독식하다시피 하며 '전설의 제임스(Legendary James)'라고 불렸다. 제임스는 유 부회장의 영어 이름이다.
2002년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합병 이후 2007년부터 작년말까지 무려 12년간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직을 맡아 '장수 CEO'로 꼽혔다.
얼마전 DS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토러스투자증권의 창업자 손복조 전 회장은 대우증권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손 전 회장은 1984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기업금융본부장과 리서치센터 IT사업본부담당을 맡다 2000년대 초반 LG투자증권으로 잠시 넘어갔다.
그러다 대우그룹 사태 이후 대우증권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2004년 대우증권 사장으로 복귀, 단숨에 회사를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약정 점유율 1위로 끌어올렸다. 2008년 토러스투자증권을 창업해 10여년간 회장직을 역임해왔다.
DB금융투자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김성태 사장은 대우맨은 아니지만 손 전 회장 뒤를 이어 대우증권 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옛 LG투자증권 사장과 흥국생명 사장 등을 역임하다 2007~2009년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2013년 DB금융투자(옛 동부증권)에 사장으로 영입됐다. 김준기 동부증권 전 회장에 금융 자문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DB금융투자 IB사업을 이끌고 있는 손승균 부사장도 대우증권 출신이다. 대우증권 주식인수부장을 맡다 삼성증권 ECM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대우증권 출신 가운데 현재 주요 임원급 이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투자증권에서 매크로 트레이딩 본부를 이끄는 오종현 전무와 메리츠종금증권의 리테일 부문을 맡고 있는 한현철 전무, 하나금융투자의 조용준 리서치센터장 등을 꼽을 수 있다.
키움증권의 엄주성 투자운용본부 상무와 박대성 프로젝트투자본부 상무, 김지준 AI팀 이사대우를 비롯해 김현종 한화투자증권 홀세일본부장(전무), 이성욱 DB금융투자 FAS본부 상무보, SK증권 김응삼 에쿼티운용본부장(상무), 김인원 법인영업본부장(상무보), 유진투자증권 김철은 IB본부장(전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