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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수탁보수 맞춰오세요"…슈퍼갑이 된 은행들

  • 2021.04.30(금) 14:41

'골칫덩이 사모펀드' 수탁사들 최저수수료 요구
펀드 편입자산 제한에 최저 AUM 100억 허들도

# "최근 모 은행 수탁 담당자에게 펀드 수탁을 의뢰했더니 내부 기준에 따라 펀드별 수탁보수가 연간 1000만원이 안되면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펀드별 최소 보수 1000만원을 맞추려면 수탁 보수가 10bp라고 해도 펀드 규모가 100억원이 되어야 하는데 소규모 운용사는 다 문 닫으라는 얘기 아닌가요."

라임·옵티머스 등 대규모 사모펀드 사태 이후 수탁사들이 사모펀드에 대해 집단 수탁 거부에 나서면서 자산운용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사모펀드라면 덮어두고 수탁을 거부하는 '묻지마식 수탁 거부'와 순자산총액(AUM) 100억원이 넘는 펀드만 수탁하는 '펀드 설정액 하한'에 이어 최근 일부 은행에서는 암묵적인 '최저 보수'까지 생겼다.

여기에 펀드 내 비상장 자산 편입 시 수탁을 거부하는 '편입 자산 제한' 움직임도 나오는 등 신규 사모펀드의 진입 장벽이 턱없이 높아졌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 '수탁 거부 대란'에 신규 사모펀드 '뚝'

최근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권 펀드 수탁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8개 은행(신한·하나·우리·농협·부산·산업·SC제일·씨티)의 사모펀드 수탁계약은 2168건으로 전년 4567건보다 52%나 급감했다. 

올해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8일까지 4개월간 새롭게 설정된 사모펀드는 839개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사모펀드 수탁 건수가 급감한 이유는 수탁사의 책임이 강화된 영향이다. 라임·옵티머스를 필두로 사모펀드 환매 중단이나 연기가 잇따라 발생하자 금융당국이 기존 펀드 재산의 단순 보관과 관리만 맡아왔던 수탁사들에 리스크 관리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수탁사는 펀드 재산을 보관·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선 20개사가 수탁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 중 은행이 총 13곳에 이른다. 은행이 수탁 업무를 거의 도맡아서 해온 셈이다. 

애당초 펀드 자산을 제 3자인 수탁사에 맡기는 목적은 펀드 재산의 안전하고 독립적인 관리를 위해서였다. 펀드 재산을 해당 펀드의 운용 당사자인 자산운용사에 모두 맡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미연의 사고 방지책인 셈이다. 

사모펀드 사태 이전 수탁사의 역할은 단순했다. 자산운용사와의 신탁 계약을 통해 수탁자산(펀드재산)을 보관하고 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파는 업무를 담당했다. 환매 자금 송금도 주된 업무였다. 이처럼 단순 재산 관리 역할만 맡았기에 보수도 적었다. 해당 업무에 대한 대가로 자산운용사로부터 2~5bp 수준의 약정 보수를 받았다.

◇ "거부를 위한 기준?"…높아지는 수탁 허들 

하지만 책임 강화로 수탁사의 업무는 완전히 달라졌다. 수탁사는 수탁한 사모펀드의 감시·감독은 물론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금감원과 판매사에 알린 뒤 운용사에 시정을 요청해야 한다. 

갑자기 수탁업무와 책임이 늘어나자 시장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사모펀드 수탁 은행들이 수탁보수율을 기존의 10배 넘게 올리는가 하면 수탁을 거부하거나 암묵적인 최저보수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펀드 편입 자산에 대한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A은행은 해외 직접 투자 펀드는 수탁하지 않고, 비등록상품(비상장 실물자산)을 편입한 펀드도 수탁 불가 대상으로 간주한다. 증권사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통한 재위탁 펀드의 경우 AUM 100억원 이상 펀드만 수탁한다. B은행은 기존에 수탁계약 이력이 없는 운용사와는 아예 신규 계약을 맺지 않는다. 

그나마 이들은 높은 조건을 내걸고서라도 수탁을 받아주는 경우다. 자산운용업계는 두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다양한 조건을 내걸며 사실상 사모펀드 수탁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운용사들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암묵적인 최저보수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운용사의 수탁계약 의뢰에 대해 C은행은 최저 1000만원, D은행은 최저 2000만원 수준으로 펀드별 연간 최저 수탁보수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어렵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은행에 확인한 결과 C은행은 공식적인 내부 기준은 없으나 담당자가 구두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을 수 있다고 답했고, D은행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원래는 수탁보수가 일괄 3~5bp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펀드 규모에 따라 보수율을 다양하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동일한 펀드라도 펀드 규모가 작으면 보수율을 높이고, 반대로 규모가 크면 보수율을 낮게 정하는 등 수탁사들이 펀드 최저 보수 수준을 맞추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AUM 100억원 규모 펀드의 수탁보수율이 10bp면 50억원 규모 펀드는 20bp로 책정하는 식이다. 이 경우 수탁보수가 1000만원으로 같아진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보수율 인상이나 최저 AUM, 최저보수에서 더 나아가 수탁 은행들이 투자 자산에 대한 조건까지 걸고 있어 더 우려스럽다"면서 "비상장 주식 등을 펀드에 담으면 아예 수탁을 거부하고 있어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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