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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동학개미, 금융상품 판을 바꾼다

  • 2021.08.03(화) 08:05

[은행vs증권 쩐의전쟁①]
주식투자 열풍에 금융상품 트렌드 변화
퇴직연금부터 ISA까지 덩치 키우는 증권

최근 은행과 증권사 간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을 계기로 자본시장으로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기회를 잡은 증권사들은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고, 은행들은 방어에 여념이 없다. 주요 쟁점들을 짚어봤다. [편집자]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동학개미운동은 여러모로 국내 증시의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거처럼 일시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주식 투자는 이제 단기적으로 '한방'을 노리는 투기가 아닌 기본적인 재테크이자 노후를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적극적인 동학개미도 많아졌지만, ETF를 비롯해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는 샤이 동학개미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최근 금융상품의 트렌드 변화가 이 사실을 잘 반영한다. 대표적인 장기 투자상품인 퇴직연금(DC형·IRP형) 사례가 대표적이다. 원금을 보장하는 은행의 비중이 여전히 높긴 하지만 증권사들이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주식과 ETF, 펀드 등에 주로 투자하는 절세계좌인 중개형 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인기몰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상품 트렌드 바꾼 동학개미운동

퇴직연금 시장은 사실상 은행권의 텃밭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최근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증권사가 운용하는 개인형퇴직연금(IRP) 적립금은 10조1516억원으로 1년 새 4조원 가까이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21.1%에서 24.6%로 훌쩍 뛰었다.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적립금도 12조1332억원으로 3조원 넘게 늘며 점유율이 18%까지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은 IRP와 DC형 모두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은행이 운용하는 IRP 적립금은 27조7946억원으로 69.3%에서 67.7%로, DC형 역시 44조2145억원으로 67.1%에서 65.5%로 낮아졌다.

가입자들이 증권사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유는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저조한 수익률에 지친 탓이다. 실제로 IRP 계좌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증권사가 은행보다 월등히 높다. 

특히 최근 주식시장의 호조로 수익률 격차가 더 드라마틱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2분기 증권사의 IRP 수익률은 최고 21%에서 최저 3.7% 수준인 반면 은행은 최고 6.24%에서 최저 1.44% 수준에 그쳤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중개형 ISA, 4개월만에 1조 넘게 몰려

중개형 ISA의 인기몰이도 상품 트렌드의 변화를 잘 반영한다. 정부가 목돈 마련과 노후 대비를 지원하기 위해 2016년 선보인 절세계좌인 ISA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민통장이라는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가입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중개형 ISA 도입과 함께 상황이 달라졌다. 불과 출시 4개월 만에 1조2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기존 ISA의 경우 펀드에도 투자할 수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예적금 위주였던 반면 중개형은 국내 주식까지 모두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덕분이다. 

중개형 ISA는 투자중개업 라이선스를 보유한 증권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은행들이 판매해온 신탁형 ISA는 자금 유출세가 심상찮다. 아예 은행에서 증권사로 ISA 계좌를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로 중개형 ISA를 막 도입한 지난 2월 말만 해도 신탁형 ISA 계좌잔액이 6조5510억원 수준이었는데 6월 말엔 6조69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중개형 ISA 계좌잔액은 62억원에서 1조2304억원으로 1조원 넘게 늘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오는 2023년부터 투자형 ISA를 새롭게 선보임에 따라 은행에서 증권사로 자금 이동을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투자형 ISA 계좌에선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등에 모두 투자할 수 있고, 수익이 발생해도 세금은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대응 나선  은행권…전쟁의 서막

증권사 퇴직연금과 중개형 ISA의 인기몰이가 심상치 않자 은행들도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최근 은행들이 ETF를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금융위원회에 요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최근 ETF가 중장기 투자수단으로 인기가 높아지자 은행이 주로 판매하는 신탁형 ISA에서도 ETF 실시간 매매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신탁형 ISA에선 주식 매매가 아예 불가능한 만큼 주식처럼 거래되면서도 금융상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ETF 매매만이라도 허용해달라는 요구였다. 지금도 은행 퇴직연금과 신탁형 ISA에서 가입자가 운용을 지시하면 ETF를 매매할 순 있다. 다만 실시간 매매는 안돼 투자자의 매매 지시와 실제 매매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하지만 금융위는 오랜 고민 끝에 은행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ETF 실시간 매매는 은행이 아니라 증권사의 고유업무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교통정리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으로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할수록 은행과 증권사 간 업무 영역 다툼은 갈수록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고위관계자는 "최근 퇴직연금이나 중개형 ISA 상품 등으로 대표되는 머니무브는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라며 "저금리 시대 속 안정적인 노후자산 마련과 플러스 알파 수익을 추구하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시중의 자금은 자연스레 수익률을 좇아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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