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연 3%를 바라보는 고금리 국면에서 증권사의 발행어음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4조원 이상이 발행어음으로 유입됐는데 이는 증시 침체로 투자자예탁금이 나날이 줄어드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기존 은행 예·적금 대다수가 전월 실적을 채워야 하는 등 최고 금리에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뒀다면, 증권사 발행어음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발행어음 계좌 잔고 11.6조로 확대…조기 완판까지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지난달 30일 기준 11조6651억원으로 작년 말(7조4646억원)보다 56% 급증했다. 연초부터 발행어음 계좌에 유입된 돈만 4조2005억원이다.
발행어음은 업권 특성상 단기 자금 조달이 많은 증권사가 일정 수익률을 약정해 발행하는 금융상품이다. 발행어음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IB(투자은행) 가운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이 이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현재 이들 증권사의 1년 만기 발행어음 금리는 평균 연 4.10~4.15%까지 올라간 상태다. 6개월 약정으로는 연 3.0~3.95% 정도다. 웬만한 은행 예·적금 금리와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은행과 달리 가입 조건이나 한도 금액이 없는 점은 발행어음의 매력을 높이는 부분이다.
당장 최근 완판 사례에서도 이 인기는 실감할 수 있다. 실제 지난달 10일 한국투자증권이 토스뱅크를 통해 선보인 연 4.5% 발행어음은 나흘 만에 2000억원이 완판됐다. 출시 첫날에만 286억원어치가 팔리는 등 일평균 소진금액이 500억원에 달했다.
계속되는 금리인상…발행어음 금리도 올라갈까
발행어음의 이같은 인기는 최근 자산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주목할 만하다. 주식 매수 대기자금격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30일 기준 54조1642억원으로 연초(71조7328억원) 대비 4분의 1토막났다. 같은 달 5일에는 53조762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투자자예탁금이 53조원대까지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발행어음 역시 증권사가 취급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는 제1금융권 예·적금보다 '위험'한 자산일 수 있다. 일단 5000만원 한도의 예금자 보호가 안 된다. 금융당국이 인가한 초대형IB가 판매하는 상품이지만, 과거 부도 직전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한 동양그룹 사태처럼 투자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시장에서는 다만 발행어음을 판매하는 대형 증권사들이 파산할 확률을 낮게 보고, 이들 계좌로 단기 자금을 운용해 얻는 효용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앞서 두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금리인상까지 시사하면서 우리나라도 금리를 계속 올릴 가능성이 커져서다.
현재 판매되는 1년 약정 발행어음 금리 상단(연 4.15%)이 기준금리(연 2.50%) 대비 1.65%포인트 높은 점에 비추어보면, 기준금리가 연 3%만 되어도 이자율만 연 5%에 육박하는 증권사 발행어음이 나올 수 있다. 앞서 한국투자증권과 토스뱅크의 이벤트성 상품처럼 이보다 더 많은 이자를 얹어주는 발행어음 또한 기대가 가능하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물가(안정) 중심의 통화정책을 강조한 가운데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 직후에는 우리가 연준보다 금리인상을 먼저 종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를 고려하면 연말까지 기준금리는 연 3.0%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