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9월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문을 떼어내 물적분할(특정사업부문을 떼어내 100% 완전자회사로 두는 방식)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에는 일대 파동이 일었다. 미래가치에 핵심이 될 사업부문을 떼어내면서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앙금 없는 찐빵'에 투자한 셈이라며 반발했다. LG화학은 물적분할 후 100% 완전자회사로 가지고 있던 LG에너지솔루션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켰다. 이후 LG화학의 주가는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후에도 물적분할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자 금융당국은 제도개선에 나섰다. 2022년말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회사에 일정한 가격에 주식을 사가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부여를 의무화했다. 분할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투자자자 손실을 막기 위한 보호방안 마련도 상장회사에 요구했다. 물적분할 제도 개선 이후 기업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금융감독원은 6일 지난해 물적분할을 진행한 상장회사 19곳을 점검한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다양한 투자자보호방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개선 이후 일반주주의 권익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물적분할을 한 상장사들은 어디까지나 금융당국이 요구한 제도개선 내용을 표면적으로 지켰을 뿐이다.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역시 사실상 매수 가격을 협상할 수 없는 일반 소액주주 입장에선 시장가격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팔수밖에 없는 제도다. 물적분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공시를 하면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대체로 하락하는 경향이 높은 만큼 시장가격에 맞춘 주식매수가격을 주주들이 만족하긴 어렵다.
특히 현물배당, 자기주식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보호정책을 실천한 상장사는 19곳 중 1곳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제도 개선이후 물적분할을 진행한 상장사들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만 지켰을 뿐, 일반주주의 주주권익 보호에 적극 나섰다고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물적분할 19곳…13곳이 매수청구권 부여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물적분할을 추진한 곳은 19곳으로 △2018년 30건 △2020년 49건 △2021년 46건 △2022년 35건과 비교해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물적분할을 진행한 19곳 중 13곳이 반대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3곳은 주총에서 물적분할이 부결됐고 나머지 3곳은 아직 주총을 열지 않아 물적분할을 의결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적분할을 의결한 13곳 상장사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비중은 총 발행주식수 대비 평균 0.9% 수준이었다. 이중 코스닥 상장사 스킨앤스킨은 주주들이 대규모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분할을 철회하기도 했다.
19곳 상장사들은 대체로 물적분할 관련 △구조개편계획 △검토내용 △주주보호방안 등 강화한 공시서식 항목을 빠짐없이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개편계획에는 향후 1년 이내 물적분할 후 설립회사 또는 출자대상 회사의 경영권양도에 대한 계획이나 합의 등이 있다면 이를 기재해야 한다.
또 검토내용에는 물적분할의 목적, 기대효과, 물적분할 및 분할신설회사의 상장 등 구조개편계획이 회사 및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을 충실히 기재해야 한다. 주주보호방안에는 물적분할 및 분할신설회사의 상장 등 구조개편계획이 주주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주주보호를 위한 회사의 구체적인 방안을 넣어야 한다.
다만 일부 상장사는 분할관련 주주확정 기준일을 이사회 결의일 이전으로 정하면서 일부 주주의 매수청구권을 제한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분할의 목적‧효과 등 기재의 구체성이 미흡했고 구조개편 계획 변경을 했음에도 이를 정정공시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가령 A사는 분할이후 구조개편계획이 미치는 영향을 회사와 주주로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기재했다. 또 B사는 물적분할 후 신설회사의 경영권 양도 등 구조개편 계획이 없다고 기재했지만, 정정공시 없이 분할 직후 1개월 내 신설회사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주주보호 적극 나선 상장사는 '필옵틱스' 유일
일부 미흡한 곳들이 있었지만 금감원은 대체로 물적분할 제도개선 이후 상장사들이 바뀐 제도를 잘 준수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상장사들이 주식매수청구권 부여와 강화한 공시서식을 잘 지켰다고 해서 주주권익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어디까지나 법과 공시규정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상장사들이 표면적으로 지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적분할 제도개선의 핵심은 미래가치에 핵심이 될 사업부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보호를 위해 회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이다.
주주보호에 적극 나섰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한국거래소의 상장심사제도다.
앞서 금융당국은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 제도개선과 함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 보호 노력에 대한 거래소의 심사도 강화했다.
물적분할은 분할 후 신설자회사를 다시 상장시켜 기존회사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문제인 만큼 재상장 과정에서 얼마나 주주보호를 위해 노력했느냐가 중요하다. 때문에 신설자회사 재상장 시 거래소의 상장심사를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물적분할 후 재상장한 자회사 중 모회사 주주들에게 현물배당, 주식 현물배당, 자기주식 매입‧소각, 현금배당 등 주주보호방안을 적극 실천한 곳은 코스닥 상장사 필옵틱스가 유일했다.
필옵틱스는 지난 2020년 물적분할을 통해 필에너지를 100% 완전자회사로 만들고, 이후 지난해 7월 자회사 필에너지가 코스닥시장에 재상장했다. 이 과정에서 필옵틱스는 자회사 재상장에 앞서 지난해 4월 수시공시를 통해 현물‧현금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다.
실제 필옵틱스는 지난달 14일 주주들에게 자회사 필에너지 주식 현물배당과 함께 1주당 126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또 같은 날 보유한 자사주 61만3281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필옵틱스 총발행주식수의 약 3%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물적분할 제도개선 분할을 진행한 19곳 상장사 중 적극적으로 주주보호방안을 마련하고 직접 실천한 상장사는 필옵틱스 1곳에 불과한 것이다.
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비율도 총 발행주식수 대비 평균 0.9% 수준인 만큼 사실상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를 두고 물적분할 후 주주권익이 강화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옵션을 투자자에게 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감원은 "이번 점검 결과 물적분할 공시 및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관련 미흡 사례는 상장사협의회 등을 통해 기업에 유의할 것을 안내할 예정"이라며 "향후에도 물적분할 및 구조개편계획이 미치는 영향을 회사와 주주를 구분해 충실히 기재할 수 있도록 공시서식을 4월 중 개정하고 주식매수청구권 등 투자자보호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