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올해초 KT 전현직 임직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할 때부터 정권 차원에서 황 회장 스스로 물러나라고 압박 신호를 보낸것 아니겠나."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면서 KT 안팎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정권 교체 이후 CEO 사퇴설 제기→수사기관 압수수사 등 일련의 과정이 판박이 같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과거 KT 수장 자리를 거쳐간 대부분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황 회장 또한 불명예 퇴진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014년부터 작년까지 KT가 법인자금으로 국회의원 약 90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또한 후원금이 국회 정무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현 과학통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집중됐으며 이 과정에서 황 회장이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등 관여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측은 "경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입장이다.
KT가 긴장하는 것은 정권교체기마다 CEO가 중도하차한 불행한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KT는 지난 2002년에 민영화 기업으로 전환한 이후 황 회장까지 총 4명의 인사들이 CEO 자리에 앉았으나 이 가운데 2명이 불명예 퇴진했다. 표면적으로는 비리 및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다 중도하차한 것이나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적 외풍이 컸다는 지적이다.
KT는 국내 대표적인 기간통신사업자로서 1981년에 전기통신공사법 제정으로 설립됐으며 1997년 10월 '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됐다. 이후 2002년 8월 완전 민영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민영화 1기 수장은 이상철 사장(2001.1~2002.8) 뒤를 이어 취임한 이용경 사장이다. 이 사장은 KT 민영화 직전 자회사인 KTF(케이티프리텔)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한 이후 2002년 8월 임시주총서 임기 3년의 KT 신임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 사장 취임 이듬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고 이 사장은 2005년 8월 임기 만료 후 단임으로 물러났다.
이후 수장 자리를 맡은 CEO가 남중수 사장이다. 전임 이 사장과 마찬가지로 KTF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5년 8월 임시주총서 사장으로 선임됐다. 남 사장은 2008년 정기주총에서 재선임되면서 연임에 성공했으나 이 때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시기이기도 하다. 남 사장은 납품업체 선정 및 인사 청탁 등 비리 혐의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결국 그해말 사임했다.
3기 CEO는 이석채 사장이다. 이 사장 취임 이후 KT는 사장 CEO 체제를 회장으로 격상했다. 신임 이 회장은 김영삼 정부시절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회장 또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2년 3월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했으나 정권 교체 후 잡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회장은 배임 혐의와 회삿돈으로 11억원대 비자금을 만든 문제로 임기를 2년 앞두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금의 황창규 회장은 2014년 1월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임기 3년간의 경영성과에 힘입어 작년 1월 CEO 추천위원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으며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황 회장 취임 첫 해인 2014년 KT는 연결 영업손실 4066억원을 냈으나 이듬해 1조292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흑자전환을 발판으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초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KT가 세계 최초로 5세대(5G) 통신 시범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선도 기업으로서 리더십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영 성과에도 지난해 문재인 정권이 취임하면서 황 회장 또한 전임 수장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얘기가 KT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 황 회장이 이번 위기를 돌파하고 KT의 새로운 사례를 만들 수 있을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