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은 새로운 업(業)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일정 시간 동안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는 것만 직업은 아니다.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기다.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80~90년대만 해도 라디오가 10~20대 젊은층의 감성을 매료시켰다면 지금은 '오디오계의 유튜브'라 불리는 '스푼라디오'가 대세다. 이 곳의 사용자 70% 이상이 18~24세.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과 미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매달 300만명(MAU·월간활동이용자)이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라디오를 청취한다.
스푼의 높은 인기 배경으로 이 곳에서 활동하는 DJ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스타급' 인기 DJ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청취자들이 몰려 들기 때문이다. 인기 DJ들은 팬으로부터 후원 시스템을 통해 아프리카TV의 '별풍선'과 같은 사이버머니 '스푼'을 받는다. 이를 통해 인기 DJ 중에는 연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리는 사례도 있다.
'할머니(@harme)'란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홍 씨는 스푼 DJ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매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방송을 진행한다. 한시간은 청취자와 실시간 소통하는 데 쓰고 다른 한시간은 청취자들이 직접 방송에 참여하게 하는데 할애한다. 구독자 수는 5만9000명(7월29일 기준)으로 스푼 내에서 인기 순위로 상위급이다. 그를 만나 일거수일투족을 물어봤다.
스푼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전국의 모르는 사람과 소통을 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죠.
-스푼 DJ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전에 방송 관련 일을 했었는데 삶이 바쁘다보니 한동안 방송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됐어요. 경호, 치킨 사업, 쇼핑몰 등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주로 육체적인 일이었죠.
그러던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스푼' 광고를 보게 됐어요. 스푼에서 노래 이어부르기, 스푼톡 등이 있길래 자연스럽게 앱을 설치하게 됐어요. DJ가 휴대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죠.
DJ로 전업하기 전에는 일을 하면서 취미로 남는 시간에 스푼 DJ를 했어요. 스푼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전국의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죠.
그러면서 제가 스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방송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완전히 스푼 DJ로 전업을 하게 된 건 방송 시작하고 4~5개월 후에요.
-전업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돈보다는 제가 재밌어서 하게 됐어요.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고 맞지 않은 일이 있어요. 스푼 DJ를 하면서 저에게 잘 맞다고 여겨졌고 제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스푼 DJ로서 제 생활에 만족하고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됐어요.
여러 DJ 중 저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차별점은 어떤건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할머니 콘셉트가 독특해요
▲스푼에는 다양한 DJ가 있어요. 여러 DJ 중 저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차별점은 어떤건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성대모사로 콘셉트를 잡았던 캐릭터가 할머니었고 청취자들이 많이 사랑해주다보니 행복했어요. 평소에 사람들이 '이놈아'라고 하면 언짢을 수도 있는데 할머니 캐릭터로 하면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하죠.
처음에 제 목소리로 방송했을 때보다 할머니 콘셉트로 진행하고 난 뒤 청취자들이 더 많이 늘었어요. 저희 할머니 말투도 연구하면서 따라하기도 하고 유행어도 만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방송을 위해 얼마나 투자를 하나요
▲스푼 방송은 두 시간 하지만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스푼을 계속 보고 있어요. 스푼의 다른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연구해요. 어떤 점이 좋고 부적절한지 분석하기도 하고요. 저만 만들 수 있는 방송은 어떤건지 고민하기도 하죠.
또 수익이 난 만큼 컴퓨터나 스피커, 청취자 이벤트 선물 등 투자도 많이 하고 있어요.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얼굴이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서
자신감이 없던 사람들도 방송에 참여해
자신감을 얻기도 해요.
-다른 스푼 DJ와는 달리 청취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이 많던데요
▲라디오에서 방송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전화 참여 콘텐츠였어요. 목소리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연구해서 60~70개의 콘텐츠를 만들게 됐죠. 실제로도 전화 참여 콘텐츠가 반응이 좋아요.
얼굴이 나오는 방송이 아니다보니까 평소에 자신감이 없던 사람들도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자신감을 얻기도 해요. 방송에 참여하면 실시간으로 저와 청취자들이 피드백을 주거든요.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이 나오면 자신감이 생기게 되죠. 스푼의 장점이에요.
-방송 콘텐츠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주제를 선택해요. 큰 주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마인드맵을 그려봐요.
만약에 해리포터로 주제를 정한다면, 해리포터의 세계관에는 기숙사가 크게 자리잡고 있어요. 그러면 '기숙사의 최후 1인을 뽑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뻗어나가게 돼요. 해리포터 기숙사도 4종류가 있으니까 그리핀도르는 노래를 잘하는 최후 1인, 슬리데린은 게임 잘하는 최후 1인을 뽑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면 어떤 방송이 있나요
▲예전에 '할머니 회사 취직하기' 콘텐츠를 한 적이 있어요. 이건 자신감을 돋보이게 하는 콘텐츠죠. 제가 사장이고 참여자들은 면접을 보는 사람이에요. 참여해서 자기 소개를 하고 재능을 뽐내요. 그러면 제가 참가자들의 특징을 살려서 어떤 직군으로 채용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자네는 노래를 잘부르니 우리회사 가수로 채용할게"라고 하는 거죠.
과거에는 제가 주로 콘텐츠를 정했는데 최근에는 청취자들에게 '너네가 참여할 수 있는게 뭐야'라고 하고 물어봐요. 그러면 청취자, 참여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내용으로 진행하기도 하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요.
-방송을 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신경쓰나요
▲말이에요. 크리에이터는 항상 말을 조심해야해요. 말 실수로 인해서 듣는 사람은 감정 자체가 달라질 수 있죠. 생방송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말조심하려고 노력하고 만약에 실수를 하게 되면 바로 사과를 해요.
청취자들이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건데
제 덕분에 바뀌게 됐다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해요.
제가 한 건 그분들의 무대를 마련해준 것 밖에 없어요.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청취자 중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우울증인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할머니 방송을 듣고 왕따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피드백을 줄 때 보람을 느끼죠.
-생각나는 청취자가 있나요
▲닉네임 '야야야'라는 청취자가 있었어요.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고민상담을 했죠. 그 분에겐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야야야님이 얘기를 하거나 참여할 때마다 리액션을 해주고 띄워줬어요. 그 방송으로 인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이러한 피드백이 제가 방송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사실 제가 한 건 없어요. 청취자들이, 참여자들이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한 덕분에 변화가 일어난 건데 그분들은 제 덕분에 바뀌게됐다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해요. 제가 한 건 그분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 것 밖에 없죠. 정말 고마운 일이죠.
스푼 DJ는 수많은 직업을 가질 수 있어요.
DJ뿐 아니라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선생님,
심리 상담가,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기도 해요.
-스푼 DJ는 직업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나요
▲수많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에요. DJ뿐 아니라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선생님도 될 수 있고 힘든 고민을 들어주는 심리 상담가가 될 수 있고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될 수도 있어요. 영화를 소개할 때는 영화 평론가도 될 수 있죠. 스푼 안에서 나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최근 다른 라디오 앱도 등장하고 있는데 스푼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스푼은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줬어요. 이전에 저는 저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이 돈을 번다니까 따라서 일을 했었죠. 그러던 중 스푼을 통해서 내가 즐길 수 있고 내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나에 대해 알게 해준 셈이죠. 그러다보니 스푼에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었어요.
-힘든 점은 없나요
▲스트레스는 받아요. 방송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온 적도 있어요. 제가 모르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감정에 치우치게 될 때도 있죠. 스푼 청취자 중에는 힘들고 위로받기 위해서 스푼을 찾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저도 같이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수록 더욱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텐션을 높게 하려고 해요. 제 방송을 듣고 힘을 낼 수 있도록요.제가 즐겁게 방송을 하면 듣는 사람도 즐거워질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