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제약사들이 물과 함께 삼킬 수 있는 경구용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주사제와 비교해 복약 편의성이 높고 주사로 인한 부작용을 피할 수 있어 시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계 바이오기업 라니테라퓨틱스는 지난달 미 위싱턴주에서 열린 소화기학회(DDW 2024)에서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테키마(성분명 우스테키누맙,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를 알약으로 개발한 'RT-111'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에서 RT-111의 생체이용률은 복부나 허벅지 등에 투여하는 피하주사(SC)제형인 스테키마의 84% 수준으로 나타났다. 두 약물이 체내에 흡수돼 혈액에 도달한 비율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특히 RT-111은 피하주사제보다 체내에서 측정된 약물의 최대 농도가 높고, 복용 후 최대 농도에 도달한 시간도 더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약효가 더 강하고, 신속하게 발현됐다는 뜻으로 RT-111은 부작용 등의 안전성 문제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번 임상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경구용 제형이 정맥(IV)이나 피하주사제와 비교해 복용 편의성이 높고, 아낙필락시스(전신 알레르기 반응) 등의 주입 관련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전 세계에서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쓰는 항체의약품 중 경구용 제형으로 허가를 받은 약물은 없다. 항체의 경우 소화기관을 지나면서 위산 등에 구조가 손상되기 쉽고, 위를 통과해도 분자 크기가 커 장 점막에 흡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바이오기업들이 택한 기술은 로봇알약이다. 로봇알약은 위산에 분해되지 않도록 특수 코팅돼있다. 이후 장에 도달하면 알약 안에 든 약물이 마치 폭탄이 터지듯이 방출돼 장 점막을 침투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라니테라퓨틱스뿐만 아니라 노보노디스크 등이 현재 이 기술을 활용해 경구용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당뇨병이나 비만 등 대사질환 치료에 쓰이는 펩타이드(단백질) 의약품은 항체의약품과 달리 경구용으로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특수 코팅을 통해 약물이 소화효소에 분해되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크기가 작아 장 점막에 더 쉽게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약물은 노보노디스크의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리벨서스(세마글루타이드)'로 지난 2019년 미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여기에는 약물이 위산에 분해되지 않고, 장 점막 통과를 용이하게 만드는 특수 코팅기술이 적용됐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2020년 이 기술을 제공한 에미스피어 테크놀로지를 약 18억달러(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이어 리벨서스를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인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자체 약물전달기술로 경구용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사질환의 경우 가장 개발 진척이 빠른 곳은 일동제약으로 현재 비만약으로 주로 쓰이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성분의 신약 후보물질 'ID110521156'의 임상 1상 시험을 국내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밖에 삼천당제약, 디엑스앤브이엑스(Dx&Vx) 등이 자체적인 약물 전달기술을 접목해 GLP-1 성분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먹는 항체의약품은 기술가치가 높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유망기술 개발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형 연구개발(R&D) 사업 2차 과제 중 하나로 '주사제가 아닌 먹는 암치료 항체의약품'을 꼽았다. 산자부는 향후 이 과제를 추진할 산학계 연구진을 선정하고 개발자금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생물의약품은 대부분 주사제로 개발되는 한계가 있어 제형 변경 시 부가 가치 창출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구제는 높은 복용 편의성으로 주사제가 침투하지 못하는 미충족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