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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수라상에 오른 젓갈 정식

  • 2014.11.21(금) 08:21

 

젓갈의 맛은 해산물에 소금과 세월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만든 기다림의 맛이다. 곰삭은 이 맛을 옛 사람은 감동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예전 황해도 해주를 지나던 중국 사신이 새우젓으로 담근 김치와 국물을 마시다 갑자기 우느라 미처 다 마시지를 못했다. 영접 나온 관리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 만리 떨어진 곳에 계신 노모에게 이 맛을 전할 수 없어 차마 못 먹겠다고 대답했다. 맛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새우젓으로 담근 김치를 감동 김치(感動菹), 해주 새우로 담근 명물 곤쟁이젓을 감동젓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야사를 모아놓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 젓갈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조선시대에는 왕실 어른의 수라상에도 다양한 종류의 젓갈을 차렸다. 지금으로 치자면 젓갈 정식 수라상이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화성에 가서 차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궁궐에서 화성 행궁까지 오갈 때의 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서적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다. 오가는 도중 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에 오른 반찬 종류도 자세하게 기록이 남았는데 아침 수라상에까지 젓갈이 차려졌다.

 

명란젓에서부터 연어알젓 새우알젓 명태 이리젓 조기알젓에 굴젓 게장과 곤쟁이젓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고 아침, 저녁으로 수라상에 올리는 젓갈이 다 달랐으니 지금의 젓갈정식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유독 젓갈을 좋아했을까? 젓갈 맛이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젓갈이 귀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몇몇 값비싼 젓갈 빼고는 그다지 귀한 줄 모르지만 예전 어업 기술이 부족해 해산물을 많이 잡지 못했을 때,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바닷가에서 잡은 해산물이 귀했을 때는 젓갈 그 자체가 귀한 음식이었다. 

 

젓갈이 얼마나 귀했는지 산골 마을에 새우젓 장수가 들르면 처녀는 중신아비 들린 것보다 반가워했고 서방님은 장모님 오신 것보다 즐거워했다는 말까지 생겼다. 모처럼 찾아온 새우젓 장수는 부잣집 사랑에 모셨고 젊은 무당을 곱게 단장시켜 슬며시 방에 들여보냈다고 하니 새우젓 장수가 아니라 칙사 대접이다. 

 

조선의 젓갈은 맛도 맛이지만 종류도 다양해 젓갈왕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다에서, 그리고 강이나 하천에서 잡히는 모든 생선 종류를 젓갈로 만들었기에 우리나라 젓갈의 종류는 모두 140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일상적으로 밥상에 오르거나 김치를 담글 때, 혹은 반찬을 만들 때 재료로 쓰는 젓갈 종류만 세어도 대략 마흔 가지가 넘는다. 

 

심지어 먹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젓갈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별미로 꼽혔던 것이 복어알젓이다. 복어 알에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이 있어 치명적이다. 먹으면 즉사하는데 이런 복어 알을 소금에 절여 긴 세월 숙성시키면 독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독기가 약해진다. 이렇게 만든 복어알젓을 먹으면 입안이 얼얼해지는 것이 맛이 일품이라고는 하는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맛을 즐겼으니 젓갈 사랑이 유별났다. 요즘 김장철인 만큼 다양한 젓갈이 선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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