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은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여관 등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백범 김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현장이지만
이젠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철거가 한창이던 지난 2016년 3월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여론이 거세자
공사를 잠시 멈춘 적이 있다.
공사 전 수많은 민원에도
손을 놓고 있던 서울시는
반대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공사중지라는 미봉책을 내놨다.
그리곤 부랴부랴 재개발 단지 내
옥바라지 골목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2년이 지난 후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다.
이 두 지역은 지난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10개 구역으로 재개발을 추진 중인데
옥바라지 골목처럼 최근 철거를 멈췄다.
이유는 2016년 당시와 비슷하다.
생존권과 개발의 충돌이다.
명분과 실리의 싸움이기도 하다.
논란의 중심은 을지면옥이다.
을지면옥은 세운3구역 재개발 지구다.
3-2구역 토지주 60명이 보유한 지분 중
가장 넓은 약 11%를 차지한다.
을지면옥 철거 사실이 알려지자
1950~1960년대 문을 연 노포들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러면서 일단 공사를 멈췄다.
을지면옥과 안성집 등이 대표적이다.
을지면옥 주인이 평당 2억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진실 공방도 한창이다.
청년시절 이곳에 터를 잡고
60년을 보낸 한 공구점 사장님은
하루하루 속상한 마음만 쌓여간다.
"군대 전역 후 여기서 기술을 배웠어.
이제 손자 나이가 26살이니
내 인생이 다 들어가 있는 셈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돈 없고 힘없는 삶은 서글퍼.
다들 지켜보겠다고 노력은 하는데
건물주가 팔고 나가라고 하면
사실 아무 대책이 없어.
여기저기 취재도 오고 묻고 가는데
다들 자기들 일하는 거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는
그 마음은 이해 못할 거야."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강문원 위원장도 25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장인들이에요.
한 분야에서 몇십 년째 일하고 계세요.
제가 25년째인데 여전히 막내예요.
왜 청계천에서 탱크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줄 아세요?
가령 오래된 인쇄기계가 고장 나면
부품을 수입하거나 찾아야 해요.
아무리 빨리도 한 두 달은 걸려요.
그럼 기계가 멈출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 부품을 뜯어 여기로 가져오면
정품에 가깝게 가공한 후 세팅을 거쳐
바로 다음 날 작업할 수 있도록 해줘요.
주문하면 다 나와요.
도면도 없이 샘플을 만드는 거죠."
"이곳은 거대한 생산라인입니다.
흩어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한분야 한분야 부품을 만들지만
완성품을 만들진 않습니다.
철저한 협업 관계입니다.
손과 발, 눈 코 입이 모두
각자 제 역할이 있듯이
이곳도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곳에선 무능력자지만
청계천만 오면 장인이 됩니다.
이곳에 딸린 가족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아세요?
20만 명입니다.
하루아침에 그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겁니다.
열의 아홉은 세입자입니다.
그러니 무슨 힘이 있습니까.
선반에서 일하는 선배님들은
연세가 대부분 60~80대인데
그런 분들이 쫓겨나면
어디서 일하란 말입니까."
청계천 주변에는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잇는
보행 데크를 따라 조성된
메이커스 큐브가 있다.
청계천 장인들의 기술과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하나로 합쳐
새로운 4차 산업을 이끌
창의 제조산업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에 따라 만들어졌다.
정호근(가명) 씨도 조금 전 구청에서
시위를 하고 왔다고 한다.
"이곳에 입주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5분만 걸으면 원하는 재료를 구하고
장인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철거 소식을 들었어요.
이해가 됩니까?
4차 산업의 거점으로 키우겠다고
기업과 청년들을 유치하고 나서
철거를 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철거와 함께 이곳이 사라지면
5분이면 가능한 일들이
하루를 소비해야 합니다.
메이커스 큐브에 입주한 많은 분이
시위에 동참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과 싸우던 시절
'공업만이 살길'이라는 구호와 함께
생겨난 한국 제조업의 산실이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다.
이곳의 수많은 장인들도
땅바닥을 뒹구는 버려진 지라시처럼
몇십 년 동안 일했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절박함 속에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일과를 마치고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면서
동료들과 소주잔을 맞대던
가게들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80대 어르신의 공구가게를 지나며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 고생했어.
추운데 애썼어.
같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해."
어르신도 시위에 참여하고 퇴근하는
주변 상인들에게 인사를 나누신다.
을지면옥이 철거될지 모른다는 소식에
옛 추억을 한 번 더 맛보려는 시민들과
추억은 없지만 그 맛을 느껴보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을 꺼냈을 때는
모두가 좋아했어요.
함께 사는 거잖아요.
낙후된 건물을 개선하고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함께 모여
협업하며 뭔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그런 그림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를 짓는 게
도시재생입니까?
우리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자식인데
이젠 빨간조끼를 입고 시위로 내몰리는
절실한 처지가 됐습니다."
서울시가 밀어붙이는 도시재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사업인지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