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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보단 최선의 자리를 선택해요"

  • 2019.09.20(금) 10:35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화여대 주변엔 헤어숍만

300개가 넘게 있었다고 한다.

머리를 하러 간다고 하면

당연히 이대 주변 헤어숍이

정석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확 달라졌다.

몇몇 헤어숍만이 그 자리를 지키며

간신히 과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천경숙헤어도 그중 하나인데

1977년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

40년 이상 이곳을 지키고 있다.

단골 중에선 그 시절 자기 또래

딸들과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많다.

천경숙헤어 수석디자이너 송향희 씨는

이곳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송 디자이너가 반갑게 인사하는 손님도

대학 시절부터 20년 이상된 단골이다.

20살 막내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송 디자이너와 대학생 언니였던 손님은

그 시절 그 이야기로 웃음꽃이 한창이다.

"1999년 12월 천경숙헤어에 입사했죠.

5남매인데 그중 자매가 4명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머리를 만져주면서

자매들과 함께 노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할 시기

학교에서 취업 위탁교육이 있었는데

고민 없이 미용을 선택해 학원을 다녔죠.

중학생 때부터 마음 속 꿈이었거든요.

학원을 수료하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디자이너로 일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바닥을 쓸고 머리를 감기고

정리하는 일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보통 3~5년 정도 기초적인 일을 배우고

비로소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데

전 운이 좋아 2년 조금 지난 뒤부터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문제는 그 후 5년이 넘도록

계속 헤매고 있었다는 겁니다.

너무 빨리 디자이너가 되다보니

손님들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맞출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던 거죠.

주변 다른 헤어 디자이너들처럼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로 퇴사를 결정했어요.

그리고 7년 동안 모은 돈으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다 보니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자라는

마음뿐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7년이란 시간을 보낸 후

5개월 정도 어학학원만 다니면서

말 그대로 푹 쉬었어요.

그런데 물가나 학비가 비싸더라고요.

통장 잔고가 생각보다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면서 고민에 빠졌죠.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는데

언어적인 장벽이 있다 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게 미용이더라고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찾아가

최소한의 생활비만 받을 생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후에 원장님이

너같이 실력 좋은 디자이너가

왜 그렇게 적은 월급만 받고

일을 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한국에선 평범한 디자이너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유행에 덜 민감한 나라다보니

능력 있는 헤어디자이너로 보인거죠.

일주일만에 월급을 많이 올려주셨어요.

돈도 돈이지만 능력을 인정을 받으니

점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점장님이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돌아와야지 하고 연락을 하셨어요.

저는 퇴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속 기다려주신 것 같아요.

그동안 저를 찾는 손님이 많았고

1년 뒤 다시 돌아온다고 알려줬다는

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에이, 누가 날 찾았겠어요 했는데

정말 손님들에게 연락이 오고

저를 기다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어요.

아! 나를 인정해주는 분들이

많이 계셨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도 무럭무럭 자라난 것 같아요."

"2008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거죠.

화려하고 뛰어난 사람들 속에 있다 보니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평범함을 좋아하는

손님도 많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뛰어난 이들에겐 없는 장점도 생겼죠.

바로 깊은 간절함이에요.

외모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니

더 노력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삶의 자세가 자연스러워진 거죠.

환경은 같지만 변한 게 있다면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생기자

과거 노동으로 느껴졌던 일들을

이젠 즐기면서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를 찾는 손님이 더 늘고

수석 디자이너까지 오르게 되었죠."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헤어스타일은 유행에 무척 민감해요.

1년이란 시간동안 제 능력으로

따라가기엔 벅차고 힘들 만큼

미용기술이 앞서나가 있는 거예요.

그때 마침 천경숙 원장님이

영국 비달사순아카데미를 지원해주셨죠.

원장님은 늘 직원들에게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전해주고 싶다'라고 말씀하곤 하셨죠.

돈은 사라지지만 기술은 남는다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집중적으로 기술을 배우면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연수 이후 1년에 한 번씩 유럽에 가요.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많이 됩니다.

정말 다양한 자기만의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이들의 모습은

늘 신선한 충격과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면서

또 저절로 공부가 되는 거죠.

손님과 공유할 수 있는 꺼리가 늘면서

소통이 폭이 더 넓어지기도 합니다."

송 디자이너는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캐나다에 있을 때 찍은 사진 속에

제 미래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앵글 중심에 있기보단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역할이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손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손님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콕 짚어 찾아주는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송향희 헤어 디자이너는 출근 후

늘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도전하고 또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기에

최고보다 최선을 선택한다고 한다.

최고의 자리는 늘 불안하지만

최선의 자리는 남을 배려하는

넉넉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다.

그 여유 속엔 자신도 남도 모두

담을 수 있는 행복의 공간이 생긴다.

9월의 파란 가을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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