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주총 예정시간인 오전 9시 훨씬 전인 새벽부터 소액주주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취재진에게 제공된 150석 규모의 기자실은 8시 전에 만석을 이뤘다.
오전 8시 15분 aT센터 도착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주총 결과 전망을 묻는 취재진에게 최 사장은 “모든 것은 주주들에게 달렸다”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입장했다.
▲ 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장 내부 현장 |
반면 조금 뒤 입장한 김신 상사부문 사장에게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는 “그 동안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주주들에게 감사하다”며 “너무 많은 소액주주들이 합병 안에 찬성했고, 이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애초 주총은 오전 9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인원이 주총에 참석했고, 뒤늦게 도착한 주주들의 입장과 의결 참여도 허용하면서 개회가 지연됐다. 총 1000여석 규모의 주총장은 주주들과 관계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주주총회 의장인 최치훈 사장이 이번 주총의 핵심인 1호 안건을 상정하자 곳곳에서 발언권을 얻으려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은 주주 이경수씨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바이오 관련 종목들의 주가 상승률이 높다”며 “바이오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은데 합병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삼성물산 주가도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주들의 찬성을 촉구했다. 이에 찬성하는 주주들이 박수와 환호로 힘을 보탰다.
이어 발언권을 얻은 엘리엇 측의 법률대리인 넥서스의 최영익 변호사는 "이 자리가 삼성물산의 소중한 지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이 합병안은 불공정하고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특수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주려는 것”이라며 “삼성물산 경영진이 헐값에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에게 넘기려는 것은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반대표 결집을 위한 마지막 수를 던졌다.
▲ 취재 공간에 마련된 모니터에 엘리엇 측 법률대리인 최영익 넥서스 변호사의 발언장면이 나오고 있다. |
주총에 참여한 상당수의 주주들은 합병 비율에 불만을 표시했다.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제일모직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것. 합병비율을 수정해 새로운 합병안을 다시 상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불만 속에서도 "앞으로는 잘하라"는 질책과 함께 합병에는 찬성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삼성물산 직원들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을 받는 과정과 관련해 주주 강모씨는 “삼성물산 직원들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전화하고 집에 찾아오는 바람에 일부 주주들은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며 “윗사람으로부터 찬성표를 던지라는 압박을 받은 주주도 있어 부정투표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에 대해 최치훈 사장은 “당사 임직원들은 법률에 따라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 삼성물산 직원들이 주주들로부터 의결권 투표 용지를 수거하고 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결권 위임 문제도 거론됐다. 현재 병상에 누워있는 이 회장이 자신의 의결권을 적법하게 행사했느냐 여부다. 엘리엇의 의결권 대리인 장대근 루츠알레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이 위임장을 제출했는지, 했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최 사장은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과거 의결권 행사를 포괄적으로 위임해 둔 상태고, 2015년 정기주주총회는 물론 이전 주총에서도 이 회장의 의결권은 포괄위임에 의해 대리 행사되고 있다”며 “이번 합병안 역시 기존 포괄위임에 따라 종전과 마찬가지로 의결권이 행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법무팀장 역시 “이건희 회장의 의결권 위임장은 다른 주주들과 똑같이 본인 또는 대리인 의사에 의해 작성됐음을 소명하는 자료와 함께 접수됐다”며 “의결권 행사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 주주는 중복 위임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복위임장을 삼성에 유리하게 처리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삼성측 법률대리인 고창현 김앤장 변호사는 “위임장 확인은 엘리엇 측 변호인과도 협의해 처리 방법을 결정했다”며 “가급적 주주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들 간의 열띤 공방 끝에 주총 개시 1시간30분만에 표결이 시작됐다. 2호와 3호 안건 중복 투표 등의 문제로 최종 결과까지 나오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 주총장인 aT센터 외부에서 각종 시민단체 등이 합병안 반대 시위를 벌였다. |
집계 결과 투표에 참여한 의결권 중 69.53%가 찬성해 합병 안은 통과 됐고, 다수의 주주들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살렸다. 논란에 비해 압도적인 표차에 "예상외로 싱겁게 끝났다"는 반응도 터져나왔다.
합병안 통과로 목표를 달성한 최치훈 사장은 주총을 마친 직후 취재진 앞에서 지지해준 주주들을 비롯해 반대했던 주주들,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최 사장은 “우선 합병에 지지하고 찬성해준 분들께 감사하고 앞으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며 “또 반대하신 주주들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많이 들은 만큼 고쳐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에게는 "광고를 본 주주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무덥고 비오는 장마철인데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고생이 많았다"며 노고를 치하했다.
표 대결에서 패한 엘리엇 측은 주총 결과에 대해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져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