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내년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대폭 감축하면서 건설업계가 시름에 빠졌다. 당장 일감이 줄어들 걱정이 커져서다. 정부는 이제 충분히 인프라가 깔린 만큼 예산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를 포함해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경제의 골격이자 혈관인 도로, 철도, 공항 등 SOC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내 SOC 투자의 현황과 이에 따른 영향, 각계의 목소리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요즘 주택시장이 호황을 보이니까 건설경기도 좋은 것처럼 보이시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일부 주택사업을 하는 업체에 한정된 얘기일 뿐입니다. 공공공사만 하는 중소 건설업체들 영업이익률은 지난 10년간 계속 마이너스 입니다. 한계기업이 수두룩한 상태죠."
유주현 대한건설협회 회장 답변에는 한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예산 절감을 이유로 공공공사 공사비가 깎여서 산정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낮게 책정된 공사금액에 80%에서 87.8%의 낙찰률을 또 한 번 적용하면 이익을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공사실적을 유지해야 해 억지로 공사를 떠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고정된 낙찰률은 17년 전부터 쓰는 것이고, 더욱 심한 것은 발주기관이 공사비를 잘못 산정해도 건설업체는 이의제기 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이런 환경 속에서는 공공공사 의존도가 높은 지역 중소 건설업체들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역대 건설협회장 중 이런 지역 중소 건설사들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스스로가 전국 토목건축공사 시공능력평가 877위(2017년 기준)인 경기도 안양 소재 신한건설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 8000여 회원 건설사를 대표하는 협회장 자리에 올랐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장 및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설기술교육원·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이사장 등도 겸하고 있다.
유 회장은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개국 방문일정을 수행하고 있다.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해외건설 수주지원단의 건설업계 대표 자격이다. 해외로 떠나기 전 유 회장에게 SOC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과 최근 정부의 예산 축소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적정공사비 받아야 '적정임금' 내줄 수 있다"
- 공사비 적정성이 떨어진다는 게 무슨 얘기인가?
▲ 특히 공공공사가 문제다. 발주처에서 수익을 내기는커녕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공사비가 책정된다. 그래서 공공시설물의 품질이 떨어지고 각종 안전사고 등의 우려가 커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적정공사비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건 건설업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 이런 상황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치나
▲ 건설기업 경영 악화는 건설업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도급자, 자재 및 장비업자, 건설근로자와 부동산, 이사·청소업체, 주변 식당 등 비교적 취약한 계층과 업종의 소득 감소로도 이어진다. 건설사 자체도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영업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 적정공사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 정부는 '적정공사비'를 제대로 주지도 않으면서 건설사에게는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주라고 한다. 공공공사 입찰제도에 고용 확대와 같은 사회적 책임 강화 요소를 요구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어렵단 얘기다. 정부는 공공공사비 부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것 같다. 협회는 연구기관에 의뢰해 공사비 부족 실태와 개선방안을 마련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겠다. 임기 내에 꼭 이룰 목표다.
◇ "부족한 인프라가 과다한 사회비용 유발"
- 내년 SOC 예산 축소와 관련해서도 요즘 활동이 뜨겁던데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도로 총연장, 자동차 1대당 도로 총연장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통근시간은 OECD 주요국 평균인 28분의 2배가 넘는 62분이다.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은 8.6㎡다. 미국 18.6㎡, 영국 26.9㎡, 프랑스 11.6㎡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생활공간이 쾌적하고 편리해야 기본적인 생활 복지가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 시설로 과다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저하가 인프라 부족에서 시작된다는 얘기다.
- 마냥 새로 짓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 우리나라 주요 인프라는 1970~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구축됐다. 2017년인 지금은 노후시설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 만큼 노후시설물 안전 확보와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 시설개량 및 유지보수 차원의 SOC 재투자도 필요하다. 역시 SOC 예산이 지속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SOC는 장기간 지속 투자 뒤 그 효과가 나타난다. 투자시점을 놓치면 추가되는 사회비용이 커지고 금방 만회하기도 어렵다.
- 하지만 SOC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 SOC 투자를 단순히 대규모 토목 공사가 아니라 국민생활 편의를 제고하고 안전한 기본생활 공간을 확충하는 개념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SOC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 개선, 일자리 창출 등을 담당하는 복지의 한 축이다. SOC 투자가 갖는 순기능에 우리 사회가 눈을 뜨게끔 하겠다.
◇ "주택시장 과도한 규제가 불안정성 키울 수도"
- 최근 나온 8.2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한 생각은
▲ 얼마 전 경기 성남 분당구와 대구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됐다. 내달 말이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살아난다. 이러면 주택시장은 급격히 침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매우 걱정스럽다. 규제는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공급축소를 야기한다. 인기 지역의 가격상승만 불러일으킨다. 정부는 또다시 더 센 규제를 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시장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과도한 규제보다 탄력적인 정책 추진과 주택 안정적 공급이 주택 시장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이다.
- 새 정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어떻게 보고 있나
▲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연간 10조원 규모다. 5년간 50조원에 이르는 투자로 국민 주거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할 뿐 아니라 건설업계에도 소규모 정비사업 물량이 확대되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도시정비 분야 시장 진출을 타진할 기회가 될 것이다. 대형건설사도 다양한 사업경험을 지역 고유의 재생사업 특성에 맞추다 보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본다.
- 협회 내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의견차이도 적지 않을 텐데
▲ 회원사 중 98%가 중소건설업체다 보니 정책적으로 보호나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 협회의 추진정책 중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 비중이 조금 더 큰 부분도 있다. 최근에는 민간투자사업, 주택, 해외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위한 협회의 지속적인 정책추진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하는 지적에 대형사 중심 '대기업정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유 회장이 이번에 일정을 함께한 중동 수주지원단은 저유가로 인한 수주 가뭄이 길어진 중동지역에서 우리 기업의 수주활동을 지원하기위해 꾸려졌다. 중동은 전통적으로 우리 건설기업의 해외건설 수주텃밭이었지만 최근 발주가 뜸해 수주난이 극심하다. 애초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이끌 예정이었으나 국회 일정 탓에 손 차관이 대신 주도하고 있다.
수주지원단은 오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해외건설·인프라 부문을 담당하는 장관 등과 면담을 통해 우리 기업의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23일에는 UAE에 진출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한라, 쌍용건설, 두산중공업 등과 간담회를 하고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유 회장은 "그동안 미뤄졌던 대형 프로젝트들이 발주를 앞두고 있어 곧 국내 건설사 수주를 기대해 볼 만한 상황"이라며 "협회도 회원사 해외 수주나 진출 확대를 돕기 위해 정책·금융 등 측면에서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