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과열 양상이 나타나면 그동안 준비한 정책들을 즉각 시행하겠다."(지난달 2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
잠잠하던 서울 집값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또다시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미 분양가, 중도금 대출 제한 등의 카드를 쓸 만큼 쓴 상황에서 '남은 카드'가 하반기 주택 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공공택지에만 적용하던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이 필요 없어 후분양으로 선회한 단지들도 분양가 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재건축 허용 연한을 강화하거나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없애는 등의 규제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규제가 추가될수록 집값이 안정될 순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공급 부족, 거래 절벽 등으로 이어져 주택 시장이 더 경색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 분양가 규제 '3종 세트' 될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HUG가 하는 방식으로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를 관리하는 게 고분양가 해결에 제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한계가 있다고 보기에 (대안을) 고민하겠다"며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 도입 검토를 시사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아파트 분양 시 토지비와 건축비 등을 합산한 금액 이하로 분양가를 책정하는 제도로, 지난 2005년 1월 공공택지부터 도입됐다.
이후 2007년 9월 민간택지까지 확대했다가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던 2014년 12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민간택지는 국토부 주택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토록 강화했다.
이번 정부들어선 부동산 과열 조짐을 보인 2017년 11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민간택지에선 HUG의 분양보증으로 간접적인 분양가 규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진 않았다.
최근엔 HUG의 분양가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규제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공공택지에선 분양가 상한제, 민간택지는 HUG의 분양 보증(분양가 심사) 제도를 통해 분양가를 바짝 조여 온 셈이다.
그럼에도 서울 아파트값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분양가 규제의 '마지막 카드'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집값 상승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9·13 대책 이후 8개월 가까이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 주(6월 넷째 주) 0.03% 오르면서 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중심으로 상승하던 매매가격이 대단지 일반 아파트까지 확산했다고 풀이된다.
강남권 재건축 분양가가 오르며 주변 아파트 시세와 신축 아파트 분양가를 끌어올렸다는 점도 우려를 키웠다. 직방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 말 기준 3.3㎡당 2959만원으로 2년 전인 2016년(2125만원)에 비해 39%나 뛰었다. 여기에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 등을 선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선·후분양 모두 적용되고,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 개정 없이 정부 소관인 시행령 개정만으로 분양가 상한을 낮출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 재건축도, 1주택자도 꽉 막히나
이 밖에 재건축 허용 연한 강화, 고가 1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 등의 규제도 거론된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집값이 뛴 만큼 재건축 허용 연한을 현재 30년에서 40년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준공 30년 기준을 충족해 재건축을 준비 중인 단지들의 정비 사업 추진이 10년 더 늦어진다.
국토교통부가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준공후 30년이 지난 다세대, 단독, 아파트, 연립 노후주택이 전국적으로 266만6723동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만 24만7739동으로 전체의 10%에 달한다.
다주택자 추가 규제와 1주택 소유자의 세금혜택 축소도 가능한 방안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개최한 종합부동산세 토론회에서는 5주택 이상 보유자와 청약조정지역내 3주택 이상 소유자의 종부세를 현행보다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 논의됐다.
다주택자,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자녀 등에 부동산 증여가 급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증여세를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1주택자도 규제의 칼을 들이민다. 그동안 1주택 보유자는 실거주자로 보고 집을 오래 보유하면 세제 혜택을 줬는데 실거래가가 9억원이 넘는 고가주택 보유자의 경우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세금혜택을 없애는 방안도 가능하다.
◇ 주택시장 찬바람 더..."규제할수록 공급 씨말라"
이처럼 정부의 추가 규제가 실현되면 하반기 주택시장은 더 경색될 것이란 전망이 높다.
당장은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어도 아파트 분양을 준비하던 사업자들이 분양 시점을 늦추면서 아파트 공급이 더 감소하고,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은 사업을 더 연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밀어내기 분양'(규제 적용 시점 전에 서둘러 분양하는 것)을 하려는 단지들이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론 공급 물량이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공급시장을 교란해 주택 공급 부족, 로또 청약 등의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인근지역 시세보다 분양가가 낮게 책정되면 로또 청약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공급자 입장에선 금융비용 증가와 수익성 악화가 이어질 수 있어 공급에 적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허용연한 강화 등의 규제가 도입되면 정비 사업 지연도 불가피하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추가 규제를 하면 정비사업 추진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준공 30년 된 단지들이 많아 재건축 기대감이 높은 분당, 목동, 상계동 등은 재건축 기한이 늘어날수록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규제가 점점 늘어날수록 주택 시장의 부작용이 더 커지는 '규제의 역설'도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함영진 랩장은 "과도한 거래 규제 때문에 서울 지역에 유통되는 매물이 씨가 마르고, 낮은 거래량 속에 전고점을 돌파하면서 시세가 상승하는 아이러니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면서 "추가 규제를 하면 매도 우위 시장이 형성돼 매물이 점점 사라지고 가격도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