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부동산 관련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면, 그것은 바로 '국정농단'입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자신의 SNS에서 작심한 듯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정부가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언급이었는데요. 특히 부동산 관련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9월 국가 통계시스템 운영 및 관리 실태 감사에 돌입한 뒤 관련 기관인 통계청과 국토교통부, 한국부동산원을 정조준하고 있는데요. 원 장관은 이번 감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처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겁니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원 장관은 '국정 농단'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요. 과연 이번 사건은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까요.
김현미 "서울 집값 11% 올랐다"…'논란' 불러
지난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한 마디에 소요가 일었습니다. 김현미 당시 장관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집값이 11% 올랐다고 언급한 건데요.
질문을 한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놀라며 "몇 %요? 11%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본회의장 의원석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에이", "장난하나"라는 등의 야유를 쏟아냈고요.
김 전 장관의 이 한마디는 논란을 부르며 일파만파 확산했습니다. 앞서 한 시민단체가 같은 시기 서울의 아파트값이 52% 올랐다고 발표한 터라 문재인 정부가 집값 상승 폭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KB국민은행 통계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52% 올랐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는데요.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에 걸친 집값 상승률(26%)의 두 배에 달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김 전 장관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월간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대비 2020년 6월까지 서울의 주택종합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11.28%로 집계됐습니다.
이 자료에서 아파트만 따로 보면 같은 기간 13.8% 오른 것으로 나오는데요. 당시 국토부는 이를 근거로 각종 설명 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4% 올랐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경실련이 제시한 아파트 중위가격에 대해 "중위 매매가격은 국가 전체의 통계로 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중위가격 통계치가 정말 한계가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중위가격은 표본을 구성한 전체 주택의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위치한 가격을 의미합니다.
사실 감정원에서도 중위가격을 집계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문재인 정부 3년 간 57.6% 오르기도 했습니다. 국토부나 김 전 장관이 이 통계를 일부러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만한 일입니다.
정부 통계가 이상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는데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부동산 실거래가 통계를 통해 부동산정책의 토대가 되는 부동산 공공 통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큰 도움이 된다"며 통계 산정 방식을 개선할 것을 지시했고요.
부동산원은 이듬해 7월부터 주간 아파트값 표본 수를 기존 9400가구에서 3만2000가구로 3배 넘게 확대하는 등의 개선 방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가계동향 조사도 '감사'…정치 이슈 비화
이 논란은 이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감사원이 이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슈가 재점화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특히 부동산 통계뿐 아니라 지난 2018년 벌어졌던 가계동향 조사 논란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는데요.
문재인 정부 초대 통계청장인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추진한 이후 소득분배지표가 되레 악화했다는 가계동향조사를 발표했다가 그해 8월 전격 경질된 바 있습니다. 이후 관련 조사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 작업이 이뤄졌고요.
이제 단순히 '부동산 통계' 오류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인 이슈가 된 듯한 분위기인데요. 통계를 제대로 바로 잡자라는 목소리보다는 원 장관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이 줄줄이 나서서 지난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박정하 국민의 힘 수석대변인은 18일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판타지 소설'이라고 꼬집었는데요. 그러면서 "문 정부의 통계청이 판타지 소설을 위해 숫자까지 조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통계청장을 지냈던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역시 "감사원이 들여다보는 2018년 통계 조작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비판했고요.
부동산원 집값 통계, 지금은 정확할까?
전문가들은 통계의 경우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의도로 활용될 여지가 큰 만큼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문제가 되는 부동산원의 매매가격지수의 경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이 지수는 표본을 추출해 해당 단지의 실거래가와 주변 시세, 부동산중개업소 의견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데요. 표본 아파트의 거래가 없거나 주변 거래가 없는 경우 '거래 가능한 가격'을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감사원 역시 부동산원이 매매가격을 산출하기 위한 표본 추출을 적절하게 했는지, 거래 가능한 가격을 객관적으로 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원 장관이 부동산원 통계의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개선하겠다는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역대급 거래 절벽과 함께 집값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는데요. 원 장관은 그간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거래가 없는 속에서 과연 부동산원은 오류 없이 '거래 가능한 가격'을 제대로 산출하고 있는 걸까요. 혹여 조사원이 장관의 인식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부동산원 통계의 구조적인 한계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원 장관이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을 해소하는데 적극 협조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이런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덧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니까요.
서진형 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통계는 정치적 산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같은 통계를 놓고도 해석을 다르게 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통계를 왜곡시키려고 하면 끝이 없는 만큼 어느 정부든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