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완화 보따리에 '둔촌주공' 등 신규 분양 단지엔 화색이 돌 전망이다. 전매 제한과 실거주 의무 등이 완화되면서 계약을 망설였던 당첨자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어서다. 기존 주택 처분에 어려움을 겪는 1주택자들도 한시름 놓게 됐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을 앞둔 신반포4·15구역과 잠실진주 등도 수혜 대상이다. 분양가와 관계없이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돼 수요자들의 부담이 대폭 줄었다. 다만 부동산시장 침체로 과거처럼 청약 수요가 폭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둔촌주공이 최대 수혜지?
국토교통부는 3일 '2023년도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주요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신규주택의 전매제한 기간을 축소하고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게 골자다.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 상한 기준과 1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의무도 없앤다.
일부 방안은 법 개정이 필요해 시행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이미 분양한 단지에도 소급 적용한다. 오늘(3일) 계약을 시작한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최대 수혜지로 꼽히는 이유다.
이 단지의 경우 전매제한 기간은 애초 8년에서 3년으로 대폭 줄고, 2년의 거주의무 기간도 사라진다. 2025년 1월 입주 예정인 점을 고려하면 입주 후 1년만 지나면 집을 팔 수 있는 셈이다. 분양가가 12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전용 84㎡ 이상 주택의 당첨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둔촌주공은 청약 때 기대보다 낮은 경쟁률을 보이며 계약률 또한 낮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상급지로 꼽히는 인근 송파구 헬리오시티 등의 호가가 급락하면서 청약의 매력이 뚝 떨어진 상황이다. 계약률이 80%를 밑돌면 사업 대금 차환까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거주의무가 사라졌으니 전세로 잔금을 충당할 수 있고, 전매제한 기간이 확 줄어든 것도 당첨자 입장에서는 큰 호재"라며 "통상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들은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당장 둔촌주공은 계약률이 예상보다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제 프리' 강북, 대출 되는 강남
앞으로 분양을 앞둔 단지들도 미분양 우려를 한시름 덜게 됐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은 규제지역과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에서 전면 해제된다. 비규제지역에선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고, 1순위 자격요건도 완화된다.
오는 5일부터 입주자모집승인을 신청하는 단지들이 적용 대상이다. 연내 분양 예정인 이문 1(3069가구)·3구역(4321가구)과 휘경3(1806가구), 공덕1구역(1101가구)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강남과 송파 등은 규제지역 해제에선 제외됐지만, 중도금 대출은 받을 수 있다. 중도금 대출 보증을 위한 분양가 기준이 폐지되고, 기존 5억원의 인당 보증 한도도 폐지한다. 실거주의무가 사라져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도 있다.
올해 규제지역에선 서초 신반포4(1621가구)·15(641가구)와 방배 5(3080가구)·6(1097가구) 등의 대단지가 분양을 준비 중이다. 송파구엔 잠실진주(2678가구)가 분양을 예정했다.
1주택자의 경우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아도 분양권을 얻을 수 있다. 매수심리가 급격히 악화해 기존 집을 팔기 어려웠던 1주택 당첨자들은 급매 대신 버티기를 선택할 수 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강남은 대출이 불가능해도 기꺼이 청약하는 '그들만의 리그'인데 대출까지 가능해지면 수요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1주택자들은 어쩔 수 없이 급매로 내놨던 주택을 회수할 수 있게 돼 부담을 한결 덜었다"고 말했다.
수요 폭발은 먼 얘기…양극화 계속
다만 규제 완화가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출 규제를 완화해도 이자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 최근 중도금 집단대출 금리는 1금융권 7%, 2금융권 8~10%까지 치솟았다.
전방위적인 규제 해제가 이뤄진 만큼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대기수요가 풍부한 서울 등 수도권은 수요가 몰리는 반면, 이미 공급물량 소화가 어려운 지방은 미분양 적체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여신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2020~2021년 수준의 단기 청약 수요 확대나 호황 기대는 제한적"이라며 "중도금 대출 금액 상한 폐지로 서울 및 수도권 인기 사업지에 청약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 적정성에 대한 수요자들의 시선도 날카롭다. 입지가 뛰어나도 분양가와 인근 시세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면하는 분위기다. 재건축 최대어로 꼽혔던 '둔촌 주공'과 '강동 헤리티지 자이'의 흥행을 가른 것도 분양가라는 분석이 많았다. ▷관련 기사: 강동헤리티지·마포더클래시 청약 흥행한 이유는 '가격'(12월21일)
박지민 대표는 "과거 과천 지식정보타운이나 위례신도시 단지들은 전매 제한이 8~10년이 걸려있어도 분양가가 시세의 절반 수준이니 수요가 폭발했다"며 "청약할 수 있는 조건이 좋아진거지 청약 수요 자체가 증가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혜택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전매 제한 완화나 실거주 의무 폐지는 매도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다주택자, 혹은 임대사업자들이 주로 요구했던 내용이다.
장재현 이사는 "지금처럼 주택 매수심리가 꺾였을 때는 전매 제한 기간이 10년이든 3년이든 실수요자에겐 크게 차이가 없다"며 "양도세 완화 등 각종 세제 혜택과 더불어 임대사업자가 증가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