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재건축 흔적남기기' 사업이 사실상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개포주공1·4단지, 잠실주공5단지가 줄줄이 '한 동 남기기'를 철회한 가운데 마지막 남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흔적 지우기에 나선다.
반포1·2·4주구 재건축 조합은 조만간 '미래문화유산'으로 남겨둔 108동 철거 여부를 결정해 서울시에 변경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경우 앞선 단지들처럼 '백지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포주공1·2·4주구 "철거 요구할것"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은 조만간 서울시에 '108동' 철거 요청에 나설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조합 관계자는 "오는 2~3월께 사업시행변경계획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108동을 철거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 변경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재건축을 위해 대부분 철거한 상태지만 108동은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남겨뒀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에 따라 건축사·문화사적 가치가 있는 아파트 건물 일부를 남겨놓게 했다.
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 당시 '철거'보다 '재생'에 초점을 맞춘 정비사업을 추구하면서 추진한 '흔적남기기' 사업의 일환이다.
박 전 시장은 개발 초기 아파트의 생활 양식을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울 노후 재건축 단지 4곳의 1~2개 동을 보존하게 했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15동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429동·445동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523동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108동 등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과 서울시장 교체 등이 맞물리면서 개포1·4단지, 잠실주공5단지의 재건축 존치 건물은 철거하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조합원들이 '철거'를 요구하면서 박원순표 '흔적남기기' 사업도 사실상 백지화하는 분위기다.
애초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1·2·4주구 108동은 주거역사박물관으로 조성된다. 5층 높이인 108동을 리모델링해서 전시실과 체험실 등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1973년 준공된 반포주공1단지는 국내 첫 대단지(기존 2210가구) 주공아파트인 만큼 1970년대 강남 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당시 서울시의 판단이다.▷관련기사:[아파트 연대기]반포주공1단지 청약당첨 위해 불임수술까지(2022년1월10일)
흔적지우기를 지운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 관계자는 "(108동 존치 관련해) 조합원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며 강한 철거 의지를 내비쳤다.
그도 그럴것이 이 단지는 반포에서도 '알짜 입지'인 데다 초고급아파트로 탈바꿈할 전망이라 노후 건물 존치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디에이치클래스트'(현대건설 시공)로 재건축하는 1·2·4주구는 55개 동, 지하 5층~지상 최고 35층, 5388가구(전용 59~212㎡)의 메머드급 단지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지하철 4호선 동작역과 9호선 구반포역을 끼고 있는 데다 국내 최초로 단지 내 아이스링크장, 레고랜드, 오페라하우스 등 고급 커뮤니티시설이 조성된다.
더군다나 앞서 개포1·4단지, 잠실주공5단지 등 3개 단지 모두 '흔적남기기'가 백지화된 만큼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역시 철회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앞서 개포1단지는 15동, 개포4단지는 429동과 445동을 남겨놓기로 했었다. 개포주공이 국내 최초 연탄보일러가 도입된 아파트라는 이유에서다.
잠실주공5단지도 중앙난방 시스템을 도입한 최초의 아파트라는 의미에서 523동을 남기는 방안이 추진됐었다.
그러나 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박원순 흔적지우기' 중 하나로 이들 단지도 '전면 철거'하기로 했다.
개포1·4단지는 2021년 12월, 잠실주공5단지는 2022년 2월 서울시의 철거 결정이 났다.
서울시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108동의 존치 여부 등을 연내 설계공모를 통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2·4주구의 경우 해당 건물을 활용한다는 것으로 보존과는 결이 다르다"며 "현 방향도 108동을 완전히 존치한다는 게 아니라 향후 설계공모를 통해 방향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108동을 그대로 남겨서 그 안에 박물관을 조성할 수도 있고, 철거후 그 자리에 박물관을 만들수도 있는 등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주거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연구 용역은 마쳤고 연내 설계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최대한 주민 의사를 반영해서 설계 공모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108동 존치 여부는 아직 검토중에 있는 사항"이라며 "주민들이 철회 요청을 하면 검토를 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