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들은 '이 건물'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로 미세먼지 농도를 가늠한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입니다. 123층으로 워낙 높아서 근처 어디서든 이 건물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초고층빌딩은 부산에 많습니다. 전국 고층빌딩 상위 2~4위를 차지한 엘시티를 비롯해 해운대엔 두산위브더제니스, 아이파크 등이 있고, 부산국제금융센터 역시 9위에 올랐습니다. 바다 조망에 대한 높은 수요와 시의 적극적인 건설 정책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추세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빌딩풍과 조망권 침해 등의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부산시가 '높이 규제'에 나섰습니다. 반대로 서울시는 '35층 규제' 등을 폐지하고 용적률 상향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초고층빌딩의 '성지'가 바뀔 수도 있을까요?
초고층빌딩 '성지'된 부산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에 따르면 국내 초고층빌딩 상위 10개 중 6개가 부산에 있습니다.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 타워동(411.6m), 엘시티 타워A동(339.1m), 엘시티 타워B동(333.1m) 등이 2~4위에 안착했습니다.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A동(300m), 아이파크 주동2(292.1m)은 각각 7, 8위고 부산국제금융센터(289m)도 9위에 있습니다.
서울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서울 송파 롯데월드타워(554.5m)와 여의도에 있는 파크원 타워1(322m), 서울국제금융센터(IFC·284m) 등 3개가 상위 10위권에 있습니다. 이밖에 인천 포스코타워 송도(305m)가 초고층빌딩으로 손꼽힙니다.
건축법상 초고층빌딩은 50층 이상의 건축물을 말합니다. 건축물이 높을수록 안전 우려가 커지기 때문에 50층 미만 건축물보다 훨씬 까다로운 허가 기준이 적용됩니다. 30개 층마다 한 층을 비우고 대피 공간을 설치하도록 한 '초고층 재난관리법'이 대표적 예입니다.
이런 기준을 모두 통과하려면 건축비용도 많이 증가합니다.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100층 이상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프로젝트도 50층짜리 3개 동으로 변경됐을 정도니까요. 결국 초고층빌딩 건립은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건축주와 지자체의 의지가 일치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 부산시는 엘시티를 짓기 위해 규제를 여럿 완화했습니다. 해운대 바다 근처에 주거시설 건립을 금지한 '중심지관지구'를 해제하고, 해안부 건물의 높이를 60m로 제한했던 규정도 삭제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부산시는 고층건축물 허가에 '진심'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허가된 30층 이상 고층건축물 중 18%(연면적 기준)가 부산에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같은 기간 서울시는 2%에 그칩니다.
규제 조이는 부산 vs 푸는 서울
다만 앞으로는 초고층빌딩의 판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빌딩풍, 조망권 침해 등 초고층빌딩의 부작용을 경험한 부산시가 '높이 규제'에 나섰습니다. 시는 지난 2020년 전국 최초로 '건축물 높이 관리 기준'을 수립했습니다. 경관 훼손과 난개발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수변관리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해운대 등 수변이 아파트 등으로 개발되면서 수변 공간이 사유화됐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런 지역에 경관축, 통경축 등을 제시하고 공공성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반면 서울시는 높이 규제 완화에 적극적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9일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한강변 핵심 거점을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하는 게 골자입니다. 도시혁신구역이 되면 건축 용도 제한을 받지 않고, 용적률과 건폐율도 시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 금융중심지는 용도지역을 상향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한강변 주거지 높이 규제는 더 완화됩니다. 시는 작년 3월 이미 주거용 건축물의 35층 이하 높이 규제를 폐지했는데, 앞으로는 아파트의 주동을 최고 15층으로 규제한 높이 규정도 삭제할 예정입니다. ▷관련 기사:서울 아파트 '35층 룰' 연내 폐기…50층 아파트 줄이을듯(2022년 12월1일)
한강변 정비사업지는 이미 들썩입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최고 65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하며 용산 한강맨션도 68층으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부산에서 경험한 부작용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용적률, 건폐율 등 높이 규제 완화는 필연적으로 난개발의 부작용이 따른다"며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데 따른 공공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