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분양가'
한 부동산 커뮤니티 이용자는 최근 아파트 분양가를 이렇게 칭했다. 미분양이 나면 추후 가격이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최초 분양가를 '가짜'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분양 털이'에 나선 시행사들이 할인 분양, 중도금 유예 등 금융혜택을 제시하자 '일찍 분양 받을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지역별·단지별로 차이가 있을순 있지만 일부 핵심 단지가 아닌 이상 '배짱 분양가'를 내놓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늘이 제일 싸다고?…미분양 지역선 'NO'
최근 전국적으로 미분양 현상이 심화하자 시행사들이 수분양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금융 혜택을 제시하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438가구로 정부가 '위험선'이라고 봤던 6만2000가구를 훌쩍 넘겼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민간분양 아파트 34개 단지 중 21곳(61.8%)이 1·2순위 청약에서 미달됐다. 신규 분양한 아파트 10곳 중 6곳은 주인을 다 찾지 못한 것이다.
금리 인상, 집값 하락 등에 따라 주택 매수 심리가 꺾인 탓이다. 반대로 금리가 낮고 집값이 오르던 2020~2021년엔 수요자들이 '오늘이 가장 싸다'며 분양 시장에 몰리는 '청약 광풍'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뒤집히자, 수요자들이 분양가를 깐깐하게 따지며 청약에 신중하게 나서면서 청약 시장의 온도차가 극명히 갈렸다.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오랜 기간 팔리지 않는 단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금융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요자들 사이에선 '오늘이 제일 비싸다'며 가격이 추가 조정되길 기다리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대표적인 방법이 '할인 분양'이다.▷관련기사:[분양 흥정시대]깎고 깎는 요즘 아파트 시장(4월11일)
신규 분양 시 1·2순위 청약에서 마감에 실패하면 선착순 분양 또는 무순위 청약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이때 최초 분양가에서 가격을 내려 공급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북구 '칸타빌수유팰리스'의 경우 지난해 3월 최초 분양했지만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아 최근 9번째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최초 분양가에서 최대 35%가량 할인한 금액으로 전용 78㎡의 경우 10억원대에서 6억원대로 가격을 낮춰 분양했으나 그럼에도 일부 평형에서 미달이 발생했다.▷관련기사:'같은 아파트 다른 분양가'…칸타빌 할인분양에 기계약자 어쩌나(4월13일)
'중도금 유예'를 채택한 단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선분양제에선 시행사가 건설 비용을 금융사에게 먼저 빌린 뒤 수분양자가 낸 중도금으로 갚는 게 일반적인 만큼 중도금이 분양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통상 60%)이 가장 높다.
그러나 최근엔 수분양자들의 금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도금의 일부만 내게 하고 나머지는 잔금 치를 때 내도록 납부 시기를 늦추는 단지가 늘고 있다.
대전시 동구 '대전역 e편한세상 센텀비스타'는 중도금 비율을 20%까지 낮췄는데 계약자가 원한다면 계약금(10%)과 중도금 1차 2%만 자납하면 나머지 금액은 입주까지 연체료 없이 유예할 수 있게 했다.
서울 강북구 '엘리프 미아역'도 계약금 10%, 중도금 2%만 먼저 내고 나머지 88%는 입주 때 내도 된다.
은마도 인하…"신규 분양가 낮아질수도"
'청약 불패'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권에서도 분양가를 조정하고 나섰다.
강남구 대치동 '재건축 대어'인 은마아파트는 최근 일반분양가를 3.3㎡(1평)당 7700만원에서 7100만원으로 약 7.8% 낮추기로 했다.
대출금리 인하, 인근 공시지가 하락 등을 분양가에 반영키로 한 것이다. 이로서 전용 84㎡의 분양가는 약 26억원에서 약 24억원으로 낮아진다.
전반적으로 분양가를 무작정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이전보다 가격이 획기적으로 인하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민간분양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2021년 1303만원 △2022년 1534만원 △2023년(4월17일 기준) 1691만원 등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올 들어 기본형 건축비도 두 차례나 오르면서 분양가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토부는 공동주택 분양가 산정 시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를 지난 2월 1.1% 인상한데 이어 3월 정기고시에서 0.94% 추가 인상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배짱 분양'은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분양 성패는 초기 분양률이 좌우하는데 청약 미달이 나서 분양가 할인 등 인센티브를 주면 사업 손해로 이어진다"며 "차라리 선제적으로 분양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해서 분양률을 올리면 자금 순환고리가 원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값 상승기에 분양이 잘 될 때는 가격 책정에 부담이 적어 땅부터 매입하고 사업성을 검토했다면 이젠 가격부터 고려할 것"이라며 "최근 서울도 분양가가 적당하게 나온 단지들은 완판에 성공했고 미분양 단지도 할인분양하면 계약률이 오르는 것처럼 가격이 관건"이라고 했다.
이어 "옛날처럼 가격을 크게 올려서 내놓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신규 아파트들이 좀 더 합리적으로 분양가를 책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