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보증금을 올릴 수도 없고, 상생 임대인 혜택이나 챙겨야겠네요"
갭투자로 서울 노원구에 집을 구매한 A씨는 최근 임차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낮춰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인근 전셋값이 하락한 데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A씨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1주택자라 상생임대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그나마 위로였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A씨와 같은 상생임대인이 증가할 전망이다. 애초 전셋값 폭등 등 '전세 대란'을 우려해 만든 제도지만, 지금 같은 하락기엔 집주인 대부분이 상생임대인 조건을 자연스레 충족하게 된다.
문턱 낮아진 상생임대인
상생임대인은 임대료를 직전 계약 대비 5% 이내로 인상한 임대인을 말한다. 상생임대인에는 양도세 감면을 위한 실거주 의무 등을 면제해준다. 소득세법에 따라 1가구1주택자가 2017년 8월 이후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을 취득한 경우 2년 이상 거주해야 비과세 대상이 되는데, 이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양도 차익의 최대 80%까지 공제되는 장기보유특별공제의 실거주 의무 요건도 면제된다. 작년 8월부터는 2주택자 이상이더라도 양도 시점에 1가구1주택자면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가 주택을 처분할 때 마지막 남은 1개 주택에 대해선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상생임대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전셋값 안정을 위해 출발했기 때문이다. 2020~2021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세입자들의 불안이 심화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 기간 누적 전셋값 변동률은 36.3%에 달한다.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3법 도입 2년을 맞은 2022년 8월에는 그간 억눌린 전셋값이 폭등하는 '전세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었다. 임대인들이 임대료 인상을 기꺼이 포기하게 할 유인책이 필요했다.
이에 정부는 작년 6월 상생임대인 기준을 지금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현재 양도 시점에 1주택자인 임대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며 주택 금액 기준도 없다. 이전에는 임대 개시 시점에 1가구1주택자면서 시세 9억원 이하의 주택인 경우에만 상생임대인이 될 수 있었다.
집값 오를라…상생임대인 신청 늘 듯
그런데 작년 하반기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세 약세가 시작됐다. 직방이 자체 빅데이터 솔루션 직방RED를 통해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잠정)은 2년 전 대비 11.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전보다 가격을 낮춘 거래가 속속 등장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5월 수도권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의 42.8%가 감액거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 보증금은 종전 대비 약 1억원 낮아졌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임대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생하게 된 셈이다. 상생임대인을 신청하는 집주인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금리, 전세사기 등의 우려로 당분간 전셋값 하락이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사기 리스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시사 등 금융시장 리스크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며 "현시점에서 반등을 논하는 것은 섣부르고, 향후 거래 동향을 지속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경우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도 있다. 상생임대인 혜택은 내년 말까지 적용된다. 일단 상생임대인이 되면 내년까지 집값 추이를 지켜보다 매도 후 양도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상생을 택한 임대인에게 혜택을 주려고 만든 제도인데 이제는 모두에게 적용되게 됐다"며 "다주택자 규제가 많이 해제되면서 상생임대인 실효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일단 대상이 되면 다들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은 앞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며 "하락기에 얻은 상생임대인 자격을 이용해 양도세 완화 효과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