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냐 아니냐?'
올해 주택 신규공급 시장은 분양가 수준에 따라 온도가 심하게 달랐다.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비교적 분양가가 저렴하게 책정된 단지들은 '로또 청약'으로 주목받으며 청약자들로 들끓었다.
공사비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아파트)' 선호 현상 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청약 경쟁이 과열된 일부 단지에선 부정 청약 의심이 번져 당첨자 전수조사로 이어지는 등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었다.
반면 수도권에서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초기 분양률을 기대만큼 끌어올리지 못한 곳이 적잖았다. 지방 곳곳도 오랜 미분양에 허덕이는 등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청약 통장 이탈자도 갈수록 늘고 있다. 청약 제도 개편도 논의되고 있어 시장 역시 새 국면을 맞는 분위기다.
1년 내내 강남은 '청약 불패'
부동산R114 집계에 따르면 올해 서울 분양 물량은 2만9931가구로, 2020년(4만2911가구)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강남권에 분양이 몰리면서 청약 경쟁의 불씨를 지폈다.
비즈워치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서 올해 서울에서 청약을 받은 아파트 32개 청약 결과를 확인한 결과, 이들 단지의 1·2순위 청약 경쟁률(모집 가구수 대비 청약신청건수, 특별공급 제외)은 평균 103대 1로 집계됐다. 조합원 취소 물량(래미안원베일리 1가구)은 제외한 수치다.
이들 가운데 1순위 청약경쟁률이 100단위를 넘긴 단지가 12개로 전체의 37.5%였다. 그중 강남권이 절반이었다. 경쟁률 순으로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1026 대 1) △청담 르엘(667 대 1) △래미안원펜타스(527 대 1) △아크로 리츠카운티(483 대 1) △래미안 레벤투스(403 대 1) △잠실 래미안아이파크(269 대 1) 등이었다.
올해 강남권 분양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인근 시세 대비 분양가가 저렴하게 책정되는 게 특징이었다. 더군다나 입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당첨만 되면 최소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로또 청약'으로 불렸다.
지난 7월 분양한 '래미안원펜타스'는 당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 중 최고 분양가인 평당 6737만원을 기록했지만 1순위 청약에 10만명 가까이 몰렸다. 그럼에도 시세 대비 20억원 가까이 저렴하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청약 가점 만점(84점) 통장도 3개 이상 나왔다. 결국 낙첨자를 중심으로 부정청약 의혹이 제기됐다. 가점 만점을 받으려면 7인 가구가 최소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버텨야 한다. 이에 위장 전입, 세대원 편입 등의 의혹이 나왔다.
결국 국토교통부가 청약 전수조사를 예고하면서 향후 원펜타스 당첨 취소 및 계약 포기가 속속 나오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청약 경쟁 과열 실태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관련 기사:'가점 만점?' 래미안 원펜타스 당첨자 전수조사한다(8월21일)
올해 서울에서 청약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에서도 만점 통장이 한 개 나왔다. 이 단지의 평당 분양가는 6530만원으로 전용면적 84㎡가 20억~22억원대에 책정됐다. 인근 시세보다 최고 15억원가량 가격이 낮다고 여겨져서다.
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지난 5월 조합원 취소 물량 1가구가 일반분양으로 시장에 나왔다. 청약 자격 제한이 거의 없는 무순위 청약이 아닌데도 3만5076명이 몰리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시장에서는 이 분양 아파트가 시세보다 20억원가량 싸다는 말이 많았다.
이처럼 강남권에서 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많게는 20억원 정도의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 '진짜 로또'보다 당첨금이 큰 셈이다. 12월21일(1151회차) 로또 1등 당첨금이 16억2050만원이었다. 세금 33%를 제외하면 10억원이 조금 넘는다.
비강남권 중에선 '광진구 강변역 센트럴 아이파크'가 청약 경쟁률 494 대 1을 기록했다. 215가구의 소규모 단지지만 전용 84㎡ 분양가가 11억~12억원 수준으로 시세 대비 2억~3억원가량 저렴해 청약자들이 몰렸다.
2025년에도 '얼죽신' 이어질까?
반면 같은 서울 내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분양 단지들이 있다. 서울에서도 비선호 지역이거나 분양가 경쟁력이 낮은 단지들이다. 일부 단지는 '청약 미달'도 나타났다.
지난 9월 분양한 '연신내 양우내안애 퍼스티지'의 경우 일부 타입은 1순위에서 미달하며 1·2순위 청약 경쟁률이 2.8 대 1에 그쳤다. 전용 59㎡가 8억원대로 인근 시세 및 분양가와 비교하면 2억~3억원가량 높았다. 신축 선호에 기대어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했단 평가를 받았다.
결국 분양가가 청약 성패를 가른 셈이다. 주택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공사비 인상 등으로 분양가가 갈수록 치솟자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저렴한 단지만 환영받은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11월 서울 민간아파트 3.3㎡(1평)당 분양가는 4720만7000원으로 올해 1월(3707만2000원) 대비 27.3% 상승이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 민간아파트도 평당 1908만원으로 2000만원에 근접했다. ▷관련 기사:[집잇슈]'공공도 민간도'...분양가 땜에 눈물나요(12월17일)
이에 지방에서 시작된 '미분양 공포'가 수도권까지 밀려 들어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서울 미분양은 917가구 중 준공 후 미분양이 523가구로 전체의 57%를 차지했다. 이는 2021년(55가구) 이후 최대치다.
경기도는 미분양이 9771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한때 '미분양 무덤'으로 불리던 대구(8506가구)보다 많은 규모다. 이어 경북(7263가구), 경남(5313가구), 부산(5038가구), 강원(4347가구) 등도 미분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양가에 밀려 '얼죽신' 현상도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뜻)'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2030 세대들이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면서 청약 경쟁이 더 심화했지만 이 역시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했다. '선당후곰'(일단 당첨되고 분양가 등은 나중에 고민하자)는 풍토도 주춤하다.
심해진 청약경쟁과 분양가 상승이 맞물리면서 청약통장 이탈도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660만9366명으로 한 달 만에 11만명가량 빠졌다. 이로써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2년 6월 이래 29개월 연속 감소세다.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 기대감이 줄어서라는 분석이다.
내년에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올해 역대급 분양가 상승으로 옥석 가리기가 심화했다"며 "분양 물량 자체가 많지 않은 내년에는 더욱이 서울 등 일부 지역만 집중되고 나머지는 크게 관심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건설 경기 활성화 등을 위해 분양가는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제 얼죽신, 선당후곰 등의 현상도 사라질 듯하다"며 "청약으로 돈 버는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