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달 만에 꿈에서 깼다. 급히 집을 내놔야 할지, 여전히 기다려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이참에 이사 간다며 새집을 얻어 집을 내놨던 이웃은 가계약이 취소됐단다. 3~4일 안에 새 매수자를 찾아야 하는 이웃은 하루 만에 집값을 2억원 가까이 낮췄다. 이마저 계약이 안 되면 더 낮춰야 하는 상황이다.
# 오는 6월 전세 입주를 맞추고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 아파트 매수 계약을 준비 중이던 B씨는 그제 뉴스를 보고 앓아누웠다. 강남 집값이 뛰고 주변 지역까지 번지자 정부가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며, 강남 3구와 함께 용산구까지 토허구역으로 묶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약을 앞당길 만큼 유예기간도 없다. 당장 3일 뒤면 용산구 전체 아파트가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갭투자'가 금지된다.
손품 발품을 팔며 용산구에 내 집 마련을 오랫동안 꿈꿨던 B씨는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머리가 멍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안정화'를 위한 조치라는데 도무지 안정이 되질 않는 까닭이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 토로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손에 쥐었다 생각했던 현실이 갑자기 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지난 19일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약 2200개 단지, 40만가구의 갭투자를 묶는 규제다. 지난 2월12일 서울 잠실·삼성·대치·청담 일대 아파트 305개 단지 중 291개 단지를 해제한 이후 35일 만이다. 오는 24일부터 6개월간 발효되고 이후 연장될 수 있다.
A·B 씨 등이 겪은 타격은 강남 3구와 용산구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토허구역 재지정 풍선효과로 마포, 성동, 강동 등 인근 지역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서울 내 집 마련이 더 어렵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혼란의 도가니다. 토허구역이 아닌 다른 지역까지 풍선효과를 우려해 '패닉바잉'이 번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고 포장했다. 오 시장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잠실과 강남 일부에 국한했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오를 수 있는 여타지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겠다"고도 했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도 포장에만 바빴다.
그러나 시장은 불안과 공포, 혼란과 불확실성이 번지고 있다. 시장을 흔들고 불확실성을 키운 건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토허제를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는 '극약처방'에 비유했다. 지난달 토허구역 해지 때 "토허구역 지정에 매수자는 선택권을 제한받고 매도자는 재산권 행사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또 "주변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달 새 입장을 바꿨다. 극약처방을 풀겠다더니 더 광범위한 지역에 극약처방을 내렸다. 해제 때와 반대로 "가격 급등과 갭투자가 증가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토허구역 지정으로 5년 가까이 눌려있던 가격이 상승하며 거래가 늘고고, 막혔던 갭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시피 예상된 일이었다.
전문가들이 갑작스러운 토허구역 해제 당시 공통적으로 내놓은 전망이다. 시간이 지나며 안정화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는 분석도 덧붙었다.

실제 강남 3구 중심으로 집값 상승폭이 확대되자 상급지 가격상승에 대한 불안심리로 추격매수가 늘면서 인근 지역으로 상승세가 확산했다. 기준금리 인하와 대출규제 완화, 봄 이사철 등이 힘을 보탰다. 이 역시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초기 1~2주간은 "급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어 "2월 거래신고 마감시점인 3월에 들어서야 신고 급증 현상이 감지됐다"고 했다.
서울시가 실거래 신고 시차도 몰랐을까? 30일 이내 거래신고는 법적 의무지만 중개업소는 보통 기한 말일에서야 한 달 거래를 묶어 대부분의 거래를 신고한다. 매우 통상적인 일이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4개월여 기한이 남은 강남권 토허구역을 서둘러 해제한 오 시장의 결정뿐이었다. 그는 "당시 주택가격이 안정세였고 시장 위축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강남 3구의 아파트값은 작년 3월18일 이후 주간 단위로 떨어진 적이 없다. 평소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내세우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조기 대선'을 앞두고 내린 정치적 판단이었으리라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대선 후보 주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자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정책은 실패했고 '오쏘공(오세훈 시장이 쏘아올린 공)'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그 오쏘공의 후폭풍은 부동산 시장과 실수요자가 맞았다.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고 관리하는 국토부도 서울시에 장단을 맞춘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해제 결정 당시 우려를 전달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오 시장은 "부동산은 시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주택시장의 불안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책적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정부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주거안정"이라며 "국민이 주거안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시장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안정을, 시민·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변명은 민망하기만 하다.
시장 불안과 불확실성을 누가 만들고 키웠는지, 또 누가 막지 못했고 대대적인 혼란까지 불렀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안정을 내세우며 변동성을 증폭시키기만 하는 정치인과 정부를 누가 믿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