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들이 2주간 내놓은 세법이 모두 '재탕' 법안으로 드러났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다시 내놓거나 다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문구만 수정해 제출하기도 했다.
15일 국회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개원한 5월30일 이후 기획재정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에 회부된 세법 개정안은 총 18건이다. 이들 세법은 전부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법안들로 새로운 세금 제도개선 내용은 한 건도 없다.
가장 중복이 심한 법안은 부가가치세의 일부를 지방자체단체에 나눠주는 세법이다. 현재 국세청이 걷은 부가가치세액의 11%를 지방소비세 명목으로 지자체에 배분하는데, 이 비율을 높이자는 내용이다.
이찬열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갑)은 지방소비세 전환율을 20%로 올리는 세법 개정안을 냈고, 박맹우 의원(새누리당, 울산 남구을)과 김민기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시을)은 16%로 높이는 법안을 각각 제출했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10명의 국회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올해 종료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적용기한을 연장하는 세법도 벌써 3건이 제출됐다. 조정식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시흥시을)은 2021년까지 5년 연장하는 법안을 냈고, 이찬열 의원과 박병석 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서구갑)은 각각 3년과 4년 연장안을 내놨다.
지금까지 20대 국회에 중복 제출된 지방소비세 전환과 신용카드 공제 법안은 총 8건으로 전체 세법의 절반에 달한다. 어차피 국회 상임위원회에선 이들 법안을 병합 심사할텐데, 유사법안을 계속 내놓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방소득세나 신용카드 공제는 이미 심층평가와 함께 전반적인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며 "사실상 똑같은 내용의 법안들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세금 제도를 개선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도 실종됐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세법은 모두 이전 국회에서 다뤘던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 서귀포시)이 제출한 어업법인 출자 배당소득 소득세 감면 법안과 국제선박 과세특례 연장 법안은 모두 19대 국회에서 김우남 전 의원(제주)이 냈던 내용들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서울 구로구을)과 김태년 의원(경기 성남시수정구), 오제세 의원(충북 청주시서원구)을 비롯해 주승용 의원(국민의당, 전남 여수시을)도 19대 국회에서 본인들이 제출했던 법안을 다시 냈다. 그나마 김동철 의원(국민의당, 광주 광산구갑)이 낸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법안은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다뤄졌지만, 과세표준 구간을 세분화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관련기사☞ 법인세율 22→25% 인상 추진..대기업 세부담은
국회 차원에서도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해 무분별한 의원입법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유권자에게 대표발의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유사법안을 제출하는 것"이라며 "기존 법안을 베끼거나 숫자만 살짝 바꾸는 행태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