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았다면 신경도 쓰지 않을 내용이지만 일단 읽은 후에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심어준다. 국세청이 안내한 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당장 세무조사를 받을 것 같은 불안감은 장기불황에도 지난해 10조원이 넘는 초과세수를 달성하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국세청이 주는 불안감은 행운의 편지의 불안감과는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다. 정확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장난이 아니라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제시한대로의 이행을 압박한다.
# 님 좀 적게 신고하는 듯?!
실제로 사전 성실신고 안내문에는 사업자가 예전에 신고한 자료는 물론 업종 전체 자료가 참고용으로 함께 제시되기도 한다. 업계 전체는 이런데 당신은 이런 수준이니 이 부분의 신고가 잘못됐을 수 있다. 잘 보고 신고하라는 식이다. 구체적인 금액도 제시되기 때문에 체감하는 압박정도는 더 크다.
지난 1월 부가가치세 확정신고 기한 때 성실신고안내(올해부터 신고도움 서비스로 이름을 바꿈)를 받았던 경기도 소재의 한 대형 식당의 경우 전자세금계산서로 국세청에 들어 온 7~11월 주류매입금액은 2500만원이고, 예상되는 주류매출은 5700만원으로 추정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통상 주류매출이 매입원가의 약 2.3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렇게 추정했다는 추정근거도 덧붙였다.
전자세금계산서로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출을 추정해서 제시하면서 매출을 줄이지 못하도록 숫자를 박아놓은 셈이다.
해당 사업자의 세무대리인인 김모 세무사는 "술값과 안주값을 따로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자도 주류매출만 따로 신고할 수 없고 속이기도 어렵다. 국세청이 주류매출을 추정해서 보내주는 것은 이번에 처음 봤는데 사업자 입장에서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매출상황을 감시 당하고 있다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우편으로 발송됐던 사전 안내문은 보다 직접적인 경고를 담았다. 국세청은 사업자의 규모와 신고형태 등을 14개의 유형으로 구분해 신고안내문을 발송했는데, 이 중 불성실신고 혐의가 있는 사업자들에게 보낸 K유형의 안내문에는 적격증빙 과소수취, 소득률 저조, 위장가공자료, 복리후생비 과다계상, 재고자산 과다과소계상 등 구체적인 혐의점을 적시했다.
예를 들어 적격증빙 과소수취를 지적 받은 경우 "2014 귀속 복식부기 신고 내용의 매입금액과 적격증빙(세금계산서 등)의 차이금액이 1억원 이상입니다"라는 설명이 붙는다. 지난해 신고 때 적격증빙이 1억원 이상 부족했던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이번에 제대로 신고하라는 메시지다.
# 해마다 업그레이드 되는 빅브라더
국세청이 이렇게 구체적인 경고를 보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경우 유리알 지갑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득과 소비, 지출내역이 모조리 국세청에 보고되고 있고, 연말정산 항목을 보면 결혼은 했는지 부양가족은 몇명이나 있는지, 의료비는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등 시시콜콜한 개인정보까지 다 국세청에 제공된다.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은 여전히 높다고 하지만 20%대의 탈루율도 2012년 소득기준으로 조사된 것이 마지막이다. 이제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물건을 살 때에도 신용카드가 사용되고 있고, 현금거래도 현금영수증을 통해 대부분 노출된다. 자산의 매매나 소득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세금이 따라다니고 소비와 지출은 자동으로 수집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
이런 자료를 기반으로 납세자를 분석하는 시스템도 해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국세청은 2009년 말부터 소득지출 분석시스템을 도입했고, 2010년에는 소득지출 분석시스템에 해외금융자산과 해외소비자료까지 포함시켰다. 소득보다 소비가 많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같은 시기 매입매출 분석시스템을 구축해 자영업자의 매입매출 자료의 비교분석도 가능해졌다.
2011년에 도입된 전자세금계산서는 2014년 모든 사업자들에게 발급이 의무화되면서 거래가 더욱 투명해졌다. 2012년에는 성실신고확인제를 도입, 업종별로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자는 세금신고 전에 세무대리인에게 확인을 받도록 하면서 세무대리인과 사업자간의 음성적인 거래까지 차단했다.
한 일선 세무사는 "국세청을 빅브라더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거의 모든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세법에서 납세자가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국세청이 마음만 먹으면 알파고 수준의 인공지능의 신고프로그램까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